[신년특집]언론이 바뀐다-불붙은 내부시스템 변화

'데스크용 기자'와 '취재전문' 분화 조짐

전문기자제·팀제도 다시 논의···시행착오 많아 정착까지는 시간 걸릴 듯





"모든 기자가 편집국장이라는 정점을 향해 달리면서 경쟁을 하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글을 잘 쓰는 기자가 꼭 우수한 관리자가 되고 우수한 관리자가 꼭 훌륭한 칼럼을 쓰는 기자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지난해 11월 노조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인사적체 해소방안은 이렇게 이어진다.



"부장이니 국장이 되지 않아도 자기 필명을 날리면서 자랑스러운 기자생활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회사는 훌륭한 기사를 쓰는 유능한 기자에게는 연봉 1억 원 이상을 줄 수 있는 전향적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글 쓰는 기자에게는 정년이 없습니다. 신문사는 나이에 관계없이 그런 기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국장이 될 기자'와 '글을 쓸 기자'의 분리 양성. 이 언론사 경영진의 말은 미래 기자상의 변화 방향을 예감케 한다.



그런 조짐은 기자들 내부로부터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경제부장직을 지내던 중앙일보 박태욱 차장이 문화재 취재기자를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물론 대학 때 전공이 동양사학인 만큼 본인에게는 자연스럽고 개연성 있는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간부로서 좋은 평가를 받던 기자가 차장-부장-국장 승진이란 안정된 길을 벗어나 취재일선으로 다시 뛰어든 것은 언론계에서 이례적 사건이었다.



'이례적인 선택'은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신문기자는 "요즘 정보통신, 문화, 소비자생활 등의 분야를 지원하는 기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 경제, 사회 분야 출입처를 두루 거치며 부장을 지내고 국장으로 승진하는 게 당연한 루트로 여겨졌던 그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전문기자제, 팀제 도입 논의도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KBS의 경우 일부 분야에 팀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MBC도 아침뉴스프로그램에 한해 우선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출입처에 상주하는 취재시스템을 팀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논의하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시도된 팀제들이 부서제와 병행하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모두 실패했음을 돌아볼 때 동아일보의 방안이 실행되면 언론계에선 파격적 사건이 될 것이다. 출입처의 정보제공에 길들여졌던과거취재관행과 부서 중심의 경직된 의사소통 구조에 정면 도전장을 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과연 대세로 자리잡을 것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확연하기에는 언론사들의 변화시도가 너무 조심스럽다. 시도의 범위는 과거 시도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해 말 KBS는 올 1월 중 전문기자제와 팀제를 부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분야별 전문기자는 보도국 인사위원회가 가동되는 대로 선발하기로 했다. 전문기자 중 9명 정도는 외부 전문가에서 선발할 예정이다. 대상분야는 법조, 금융, 기상, 세계뉴스, 뉴스기획팀이다. 새로 구성된 뉴스기획팀은 전문기자제, 팀제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뉴스 전문채널 운영, 뉴스 개선, 기자인력 수급 등을 계획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뉴스기획팀은 특히 인터넷채널 '넷뉴스'에 이은 위성본방송, 디지털방송의 뉴스 전문채널 개국에 대비, 더 근원적인 인력확충방안과 조직 개편안을 마련할 전망이다. 종합편성 채널에서의 뉴스형태와 보도국 조직으로는 뉴스 전문채널의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MBC는 좀더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뉴스개선팀은 보도 심층화 방안으로 전문기자의 전 단계인 전담기자제와 전문기자 지원시스템인 뉴스PD제를 내놓은 바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지난해 말 공개된 새천년 MBC 뉴스 쇄신안에는 그러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뉴스PD제 등의 방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봄 개편 때 아침뉴스에 도입하는 방향을 전무 직속 뉴스정보프로그램추진팀에서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MBC 뉴스데스크는 뉴스의 새로운 방향 설정을 통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MBC는 ▷국제뉴스 확대를 위해 독일 베를린에 상주특파원을 파견하고 ▷해외통신사 뉴스에서 소외된 남미, 오세아니아,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 순회 특파원를 보내기로 했다. 또 ▷사회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는 정보통신, 문화를 뉴스의 핵심으로 부상시키고 ▷심층 분석보도를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1분 10초 내외의 발생성 리포트를 대폭 줄이는 대신 심층보도물을 늘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MBC 보도국은 조직을 일부 개편, 문화부를 강화하고 정보과학부와 라디오·인터넷뉴스부를 신설했다. 또 18명에 이르던 경찰기자들 중 8명을 타 부서에 배치했다. 한편 SBS는 98년 가을 통일, 금융, 국방, 환경, 과학 등 5개 분야에대해전문기자 후보를 지원 받아 양성 중이다.





부서체제·출입처 제도가 기자 전문화 막아





방송사들이 최근 더 보도의 심층화, 기자의 전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는 남다른 사정이 있다.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기사의 전문성은 전전 높아가는데 전문성 있는 기자를 키우기 어려운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방송기자들은 1, 2년에 한번씩 부서 이동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취재와 기사 작성, 뉴스제작까지 도맡아 기자 겸 PD로 일해야 하는 제작시스템이다.



이에 비해 신문기자들은 한 부서에서 5년 이상 때로는 10년 이상씩 근무하면서 자연스레 전문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신문사조차 전문기자제와 팀제 도입에이 지지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인 신문사에서조차 기자 전문화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뭘까? 우선 부서 중심, 출입처 중심의 취재제작시스템이 문제다. 이 속에서 전문기자는 활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자-차장-부장-국장 라인의 의사결정구조에서 전문기자에게 주어지는 지면은 제한됐다. 또 기존 부서의 기자와 출입처가 겹치면서 영역의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외부 전문가를 기자로 영입했던 중앙일보에서는 기존 기자와 전문기자의 마찰이 더욱 잦았다는 후문이 들렸다.



언론사들이 일부 도입했던 팀제는 기존의 부서제와 충돌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94년 한겨레를 시작으로 경향신문, 문화일보, 조선일보 등은 기자 전문화를 위해 부서제와 병행해 과도기적인 팀제를 도입했었다. 팀장을 부장 통제 아래 둠으로써 팀장과 부장 사이에 역할 갈등이 발생했고 결재라인은 더 늘어났다. KBS가 이번에 도입하는 팀제에서 팀장에게 부장들과 동등한 권한을 주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편으로 전문기자제와 팀제는 연공서열식 임금, 승진구조에 적합하지 않다고 기자들은 지적했다. 한 기자는 "연봉제나 능력평가제 체제에 맞는 시스템"이라며 "연공서열 구조에서 전문기자제는 무의미해지기 쉽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 때문에 안 된다는 분석도 있다. 한 간부 기자는 "입사동기는 아무개 국장님 소리 듣는데 나는 아무개 기자라고 불린다면 체면 세우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기자 전문화는 새천년 우리 언론이 피할 수 없는 화두다. 언론사 경영진에겐 다매체 시대에 기존언론기능이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방안이고, 기자에겐 피라미드식 또는 모래시계형의 인사적체 문제를 해소할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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