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덩그러니 맞닥뜨린 하얀 캔버스. 선을 그렸다 지워가며 바닥이 뚫어질세라 스케치를 하고, 비로소 채색에 들어간다.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색은 하나도 없다. 파란색에 검은색을 조금 섞고 하얀색을 더 섞자, 오묘한 푸른빛 회색을, 흰색에 빨간색 여기에 연한 노란색을 한 방울 더하자, 뭐라 표현하기 애매한 정도의 따스한 분홍색으로 변신한다. 어디서도 본적 없는 이름도 없는 갖가지 색의 향연을 즐기며 ‘붓질’을 하는 동안은 이른바 ‘멍 때리기’의 연속이다.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 공간에 흐르던 음악 소리가 들리면서 잠시 접어놨던 고민이 고개를 들고, 동요가 일어난다. 그만 엎고 처음부터 다시 할까. ‘정중동’을 쉴 새 없이 느끼며 완주를 향해 달려간다. 이만하면 됐다. 액자에 끼워 허전하던 벽에 슬쩍 기대놓으니, 웬걸 제법 근사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내 ‘작품’이다. 학창 시절엔 혹시 과제를 망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내가 어른이 되어 더듬더듬 완성한 첫 그림. 벅찬 마음에 사진도 찍어 SNS에 올리니 댓글이 딩동딩동 달린다. ‘혹시 전공하셨나요? 대박!’, ‘나도 해보고 싶다.’
# 석 달 전, 3년간 몸담았던 문화부를 떠나 편집부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화실 등록이었다. 비록 불규칙한 밤샘 근무의 대가지만 오롯이 내 것으로 쓸 수 있는 낮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진 덕분이다. 예술의 생산자, 이를 향유하는 관객, 둘 다 되어보는 것.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느꼈던 갈증을 채우고픈 ‘역지사지’, 바로 그것이었다. 중간에서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 속에 우왕좌왕했던 지난 3년을 찬찬히 돌아보고 싶음이었다.
# ‘일상 속 예술’을 실천해보겠노라며 잡은 붓, 3년 전 딱 이맘때가 떠오른다. 가로세로 2미터가 넘는 커다란 캔버스에 달당 점 하나. 멀리서 보면 점인데 가까이서 보면 돌가루를 섞은 붓 자국이 겹겹이 쌓인 사각 형태다. ‘점을 찍는 작가’라 불리는 우리 시대의 거장, 이우환 화백을 처음 만났을 때다. 이 화백이 그 해 6월 뉴욕 구겐하임 단독 회고전을 마치고 난 뒤 고국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었고, 주제는 작품명 그대로인 ‘Dialogue’였다.
- 선생님의 점은 왜 가운데가 아닌 이렇게 약간 아래나 약간 옆으로 비켜 있나요? 첫 질문에 화백의 작은 눈이 갑자기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게 말이지요. 사람의 눈은 중심으로 향하려는 본성이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것은 중앙으로 갖다 놓으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럴 때 바로 긴장감과 움직임이 생기는 겁니다, 보세요. 여기 이 점과 점이 구분하고 있는 공간, 즉 여백과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나 사이엔 울림이 생깁니다. 그리고 바로 대화 즉, Dialogue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 대화라면, 그림과 내가 하는 대화인가요? 추임새를 넣자, 거장은 무척이나 행복한 얼굴로 두 팔을 벌려가며 신이 나서 대답을 이어갔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등의 혼잣말일 수도 있고요. 내 그림을 보고서 뭔가 알 수 없는 울림이나 움직임을 느끼고 생각했다면 그게 바로 대화에요. 딱히 대상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즉 내 그림을 보고서 어떤 울림을 느꼈다면 그걸로 난 소임을 다한 거죠.”
# 요즘 서점가엔 ‘컬러링 북’이란 책이 인기다. 전문가가 그린 밑그림에 색을 칠하는 '어른을 위한 색칠 놀이'인데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직접 그려야 하는 부담을 덜어냈으니, 색만 칠하면 되겠다 싶지만, 막상 색을 칠하려 하면 어떤 색을 얼마나, 어떻게 칠할지 결정하는 게 그리 만만치 않다. 하지만, ‘색칠 놀이’는 역시 ‘색칠 놀이’. 유치하다고 볼 수도 있는 이 책이 왜 인기일까? 일단 동심으로 돌아가고픈 어른들의 힐링 욕구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또 디지털 피로감이 반영된 것이다, 활자에도 ‘참여’ 코드가 반영된 것이다, 이런 의견도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건 책이 아니다, 에세이나 인문, 철학 등 책으로 힐링하려던 사람들이 ‘마스다 미리’, ‘미생’ 등 만화로 옮겨 가더니 이젠 그마저도 버리고 ‘가벼운’ 색칠하기까지 오고 말았다는 것이다.
#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컬러링 북’이 이미 우리의 ‘문화 현상’이 됐다는 점이다. 직접 해보면 느낄 수 있다. 무엇이 달라지는지. 세밀하고 복잡한 도안에 켜켜이 색을 채워가는 사이 평소 흘려 지나쳤던 일상 속의 선과 면, 색, 부피가 자신 안에서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디자인이 색칠하기라는 '다가섬'을 통해 내 감성 안으로 들어온다.
# 가만히 물어본다. 지금 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선택된 천재들이 하는 것이라 우러러보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다시 우리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다 된 밑그림에 칠을 하든,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창작을 하든, 내 안의 감성을 느끼는 무언가를 표현한다면 이는 대화, 즉 예술이 아닐까. 다시 이 화백 얘기로 돌아가, 그날 내가 던졌던 마지막 질문을 떠올려 본다.
- 선생님, 제가 이 볼펜으로 점을 찍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 화백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미소에 담긴 그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그의 시 ‘표현’을 당시 기사에 인용했었다. 이 시가 그의 답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종을 치니 천지가 울리네, 누군가 그림 그리니 세계가 보이네, 울리고 보이니 세상이 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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