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나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나 터부는 존재한다. 대개는 민족이나 종교, 역사적 인물 등이 그런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는 현재 살아 있는 인간이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을 가장 잘 구현한 사회가 북한이다. ‘최고존엄’이라는 단어는 근래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듣는 단어 중 하나다. 우리언론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해 비판적 논조를 보일 경우 북한의 모든 선전매체와 군부는 어김없이 최고존엄 모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남한 신문사들의 회사명과 주소를 구체적으로 거명하며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대북전단 살포 논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대북전단이 북한 체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탈북자 단체들의 주장은 과장이 섞여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일성 가문의 여성 추문 등 적나라한 폭로를 담고 있는 대북전단을 북한은 자신들의 최고존엄을 건드린 최고의 도발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극단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최고존엄이 북한에서 갖는 특수한 지위 때문이다. 북한 주체사상의 핵심인 수령론은 수령을 사회의 뇌수로 표현하면서 ‘무오류성’을 주장하고 있다. 실수나 잘못이 없는 존재는 신의 영역에 속한다. 김일성 가문이 3대째 세습 독점하고 있는 수령은 바로 현존하는 신이고, 북한 주민은 그 교도들인 셈이다.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기본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언론관에 비춰보면 이런 북한 사회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다.
재미있게도 바다건너 일본에서도 유사한 흔적이 엿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하면서 한일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독도에 대해 지식이 별로 없는 데다 독도 외에도 북방영토나 센카쿠 열도 등의 다른 영토문제도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이유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정부가 항의서한을 반송하려는 한국 외교관에게 외무성 출입문을 걸어잠그고 거의 모든 언론이 한국 때리기에 몰두한 배경에는 이 대통령이 일왕(텐노)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게 한일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시 일본의 분위기는 감히 우리의 최고존엄을 건드리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왕은 2차대전 패전 이후 신성한 존재에서 인간으로 전락했지만 아직도 일본 사회 내에서는 암묵적인 신성불가침의 최고 존엄으로 간주되고 있다. 언론의 자유가 비교적 잘 보장되는 일본 사회이지만 아사히신문 같은 비교적 진보적 언론들조차 함부로 일왕을 비판할 수 없다. 비판 기사를 쓰면 평생 우익단체의 살해위협에 시달려야 한다. 배우 출신인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郞) 참의원 의원이 지난해 10월 한 파티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에게 후쿠시마 원전 피해 어린이나 근로자 실상을 담은 편지를 전달했다가 전사회적으로 혹독한 이지메(괴롭힘)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과 일본은 최고존엄 존재가 사회의 합리성과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렇다면 이 두 나라의 사이에 있는 대한민국은 어떤가. 그저 비웃고만 있어도 좋을까?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림이나 전시작품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나? 인터넷 댓글이나 SNS를 통해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나? 대통령의 공적 행동에 의문을 제기한 언론인이 명예훼손으로 법정에 서고 있지 않나? 우리 사회도 점점 신성불가침의 최고존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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