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회장은 한번도 순탄했던 적이 없었다. 황영기, 강정원, 어윤대, 임영록 역대 회장들이 모두 금융 당국의 징계를 받으면서 불명예 퇴진을 했고 새로 선임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름 금융에 대해서 좀 안다고 하는 전문가들은 금융규제, 낙하산 인사, 관치금융, 조직 내 파벌, 노조의 월권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보태고자 한다. CEO의 ‘단명’이다.
소위 잘나간다는 다른 금융지주회사들을 보자. 신한금융 라응찬 전 회장. 1991년부터 1999년까지 8년을 신한은행장으로 일하다 부회장으로 올라가 1년을 보내고 신한금융지주가 탄생하자 2010년 10월까지 회장을 지냈다. 무려 18년간 신한금융 수장직을 맡은 셈이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있다. 1997년 하나은행장으로 취임해 2005년까지 8년 임기를 지내고 하나금융지주가 출범하면서 회장직을 맡아 2012년까지 7년을 보냈다. 도합 15년이다. 하영구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도 2001년 5월 한국씨티은행의 전신인 한미은행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5연임을 이어가고 있다. 2010년부터는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 겸 씨티은행장으로 일하고 있다.
KB금융의 문제는 ‘회장이 누구냐’가 아니다. 이번에 후보군에 오른 사람들도 엇비슷한 인물들이다. 누가 회장이 됐든 ‘언제 중단될 지 모르는 임기’가 진짜 문제다. CEO의 임기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KB금융에는 아직도 과거 국민은행 출신과 주택은행 출신 간의 반목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인사철만 되면 줄대기와 상대방 흔들기가 극성을 부린다. 만약에 회장이 쉽사리 물러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있다면 출신 성분을 떠나서 현 CEO에게 힘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KB금융 노조는 경영진과 마찰이 생기면 타협하려 들기보다는 회장을 쫓아내려 한다. 협상을 통해 타협을 이끌어내기 보다 회장을 몰아내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장의 장기집권이 인정되는 분위기가 되면 협상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금융권 CEO를 ‘코드 인사’로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트집 잡아 징계거리를 만들려는 금융감독원의 폐습도 줄어들 수 있다. CEO를 옷벗기기 위한 검사와 감독이 아니라 오래 임기를 유지할 CEO를 위해 진심어린 조언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CEO 스스로도 임기연장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임기 내에 최대한 내 몫을 챙기고, 내 사람을 만드는 데 열중하기보다는 ‘책임경영’에 무게를 실을 것이다.
물론 현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장기집권’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장기집권이 스스로 권력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폐해가 있었고 그 고리를 끊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피를 흘렸던 경험이 기억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견제받지 않는 정치권력의 장기집권과 감시의 눈이 득실득실한 금융 CEO의 장기집권을 분간할 줄 아는 성숙된 인식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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