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I 규제완화, 서민·중산층 먼저 생각해야
[스페셜리스트 | 금융] 이진명 매일경제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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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명 매일경제 산업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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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서민과 중산층은 안중에 없었다. LTV, DTI 규제를 두고 하는 소리다.
LTV는 담보 가치에서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고 DTI는 소득과 부채 비율로 대출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다. DTI 규제는 소득이 없으면 아무리 비싼 담보를 내놓더라도 대출을 못받게 한 제도다. 금융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DTI라는 용어를 국민들이 접하기 시작한 건 2006년 참여정부 시절에 집값을 잡겠다고 DTI를 제한하는 이른바 3.30 대책을 내놓으면서부터다.
당시 정부는 DTI 규제를 도입하면서 시가 6억원 이상 주택에만 적용한다는 기준을 내놓았다. 2006년만 하더라도 수도권 기준으로 6억원 이상 주택은 강남 서초 송파 강동 용산 그리고 분당 일부 지역의 30평대 이상 아파트뿐이었다. 다시 말해서 수중에 돈은 많지만 일정한 소득이 없는 몇몇 부잣집 사모님이나 2세들이 투기를 못하게 하겠다는 거였지, 서민들이 안고 있는 대출의 질이나, 중산층의 내집마련을 쉽게 하겠다는 것은 애초에 계산에 들어있지 않았다. 추병직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 박병원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 등이 공급을 늘려 집값도 떨어뜨리고 서민과 중산층에게 내집마련 기회도 주자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외면당했다.
의도가 어찌됐건 효과는 있었다. 끝을 모르고 치솟던 집값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DTI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서민과 중산층은 지속되는 불황 탓에 대출을 늘렸다. 금융회사들은 부자들이 대출을 중단하자 담보대출 대상을 아파트가 아닌 연립주택과 다가구, 다세대 주택으로 확대해 규제의 범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쳤다. 가계대출은 점점 더 늘어갔고 신규 대출의 대부분은 서민과 중산층이었다. 부실 가능성이 커지자 정부는 뒤늦게 DTI 규제를 서민들까지 확대했지만 이미 빚이 빚을 낳고 있는 사람들은 은행을 떠나 저축은행과 캐피털, 대부업체, 급기야 사채시장까지 다가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계부채를 두고 ‘경제위기의 뇌관’, ‘시한폭탄’이라는 표현이 난무했다.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요구가 없지 않았지만 역대 장관들은 감히 DTI 규제를 풀 엄두를 내지 못했다. DTI 규제를 도입한 주역인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박재완 전 재정경제부 장관,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도 DTI 규제 완화에 강력히 반대했다. 신제윤 현 금융위원장도 그랬다. 신 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DTI 규제는 금융 건전성에 중요한 지표이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랬던 정부가 제도를 도입한 지 8년이 지난 이달부터 돌연 DTI 규제를 완화했다. 부동산 시장을 살려 경기를 일으켜 보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DTI 규제를 풀고 나면 부동산 경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더욱 늘어날 것 역시 불보듯 뻔한 일이다. 가계대출 부실의 위험은 서민들에게 치우쳐 있다는 사실 역시 명확하다. 규제가 풀리자 주택구입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민과 중산층이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더 받아서 생활자금으로 쓴다는 소리가 들린다.
애초에 DTI 규제가 서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번 DTI 규제 완화 역시 서민들은 부동산 경기 활성화라는 목적에 가려졌다.
규제를 풀지 말자는 얘기도 아니고 부동산 경기를 살리지 말자는 소리도 아니다. 부자들을 옥죄든, 집값을 올리든 간에, 그 바람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휘둘리는 서민과 중산층을 보호할 대책이 먼저라는 뜻이다. 서민과 중산층의 가계부채 부실을 막는 것은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또다시 외양간을 고쳐야 할 때는 이미 늦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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