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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 13층 한국기자협회에서 열린 ‘문창극 총리 후보자 낙마와 검증보도’ 좌담회에서 각사 해설위원 및 논설위원들이 공직후보자 검증보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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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는 자진사퇴했지만 언론의 검증 보도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KBS 보도를 놓고 문 전 후보자의 일부 발언만 인용해 친일인사로 몰아갔다는 주장과, 고위 공직 후보자의 역사관을 검증한 정당한 보도라는 주장이 맞선다. 또한 문 전 후보자가 주필로 근무했던 중앙일보 보도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본보는 강선규 KBS 해설위원, 고명섭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 이규연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희정 한국일보 논설위원,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등 6명의 논설·해설위원 좌담회를 통해 언론의 고위 공직자 검증보도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해보았다. 좌담회는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3층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사회=헌정 사상 첫 ‘기자 출신’ 국무총리 후보자인 문창극 씨가 대통령 지명 2주 만에 사퇴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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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선규 KBS 해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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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규 KBS 해설위원=기자 출신 총리에 관심과 기대가 많았다. 다만 여느 후보보다도 논란이 많았다. 그 논란은 우리사회의 고질적 갈등인 이념문제였고, 이것이 국론분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고명섭 한겨레신문 논설위원=기자 출신이라고 해서 총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존경할만한 인품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창극 전 후보자는 중앙일보 대표 논객으로서 논리나 깊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했다. 한 국가와 국정을 이끌 총리직을 수행하기에는 인격이나 자격도 처지고 무게감도 떨어졌다. 2주 동안 후보자로 있으면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결국 본인 스스로 사과하고 변명하다 사퇴하지 않았나. 자업자득, 사필귀정이다.
이희정 한국일보 논설위원=기자 출신은 총리 내지 고위 공직자가 되지 못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한다. 평생 권력을 비판하는 일을 ‘업’으로 한 사람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는 건 적절치 않다.
KBS 보도로 문 전 후보자에게 ‘친일파’ 낙인이 찍혔다고 하지만, 그의 여러 자질을 봤을 때 총리가 안 되는 게 바람직한 것이었다. 사실상 문 전 후보자를 반대하는 여론 중에는 훨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이 많았다. 논란이 불거진 이후 문 전 후보자의 대응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 논란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지난번 안대희 전 후보자도 마찬가지다. 후보자 지명에 앞서 충분히 검증을 했을 것이고 문제가 발견됐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겠다고 했을 때는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국민을 적극적으로 설득했어야 한다. 그런데 후보자 본인이 전부 나서서 기자들에게 자기 입장을 해명하게 하고, 결국 다시 사퇴를 압박하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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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연 중앙일보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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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 중앙일보 논설위원=언론인이 바로 정치권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인 출신이 공직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 법조계나 교육계에서도 충원되는 상황인데 언론인 출신이 (공직에) 못 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언론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직업군은 관료다. 관료사회는 자기 판단을 내리지 않고 매사 신중하다. 그러나 언론인들은 그 반대로 움직인다. 언론인들이 갖고 있는 신속성과 개방성이 공직사회에 접목되면 어떤 모습일지 기대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사장된 게 유감이다.
사회=일각에서는 문 전 후보자의 사퇴가 ‘KBS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KBS가 온누리 교회 강연 발언을 짜깁기해 왜곡하면서 그를 친일 반민족 인사로 몰아갔다는 것이다.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언론은 ‘소통’을 위해 태어났다. 이번 KBS 보도는 기본적으로 동영상의 진의 자체를 왜곡해 소통을 저해하는 역할을 했다.
과거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종교적 텍스트로 봐야 한다. 일제 식민지배나 남북분단은 누구나 원치 않는 시련이다. 이런 시련을 대하는 종교인들은 시련의 원인과 싸우려하기보다 ‘왜 나에게 시련이 주어졌는지’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개신교뿐만 아니라 불교도 마찬가지다.
KBS보도 동영상 ‘진의 왜곡’, 언론검증 일방적 내용 많아
방심위 중립성 문제 있다면 외부기관 심의 의뢰도 방법
또한 제주 4·3사건을 폭동으로 규정한 발언이 문제가 됐는데, 이게 언제부터 전혀 폭동이 아닌 것으로 됐는지 잘 모르겠다. 전직 대통령이 4·3사건을 공식 사과했다고 해서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
그 다음에 (문 전 후보자가) 우리 민족은 게으르다고 발언했는데, 물론 DNA라는 잘못된 표현을 쓰긴 했지만, 맥락 자체는 조선의 봉건적 가치체제에서 어떻게 우리 민족이 일할 의욕을 잃어버리고 있는가를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이런 전체적 맥락과 상관없이 일방적 메시지를 공중에 던져버리니까 굉장히 큰 오해를 낳은 거다.
KBS, 팩트·논평 구분 못하고 짜깁기 보도로 친일 올가미
후보자에 대한 높은 기준이 인재 등용 못하는 결과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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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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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KBS는 공영방송 아닌가. 특정 이념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매체와 다르게 전 국민들이 시청하는 방송이다. (문 전 후보자의 교회 강연) 전문을 다 봤는데, KBS의 적절하지 못한 보도가 유감스럽다. 전체 맥락으로 이해가 가능한 한 사인의 이야기를 짜깁기해서 친일의 올가미를 씌웠다.
앞으로 언론의 숙제는 단순 사실전달이 아니라 ‘가치’가 들어가는 기사를 만들 때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문창극 강연 내용이 팩트라면, 이것을 친일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논평이다. 이 논평을 현장기자가 판단할 수 있는가. 신문은 데스크와 국장, 편집인이 있다. 이러한 내부의 ‘보정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지명 때부터 총리 자격 논란, KBS 보도 검증 본격화 계기
극우 역사관 방통심의위원장 공정한 심의 가능할까 의문
고명섭=KBS가 교회 강연을 짜깁기해서 왜곡으로 몰아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상이 나오기 전에도 이미 중앙일보 칼럼과 사설, 대외활동을 둘러싸고 ‘극우’라는 평이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의 발언은 전체 인생의 흐름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문 전 후보자는 돌아가셨거나 병상에 있는 전직 대통령을 부당하게 공격하거나, 위안부 배상이 필요 없다는 극우 칼럼을 썼다. 이미 대한민국 총리로서 자격이 없다고 인식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KBS 보도는 전체 강연의 핵심 발언을 정확하게 뽑아냈다. KBS가 오히려 너무 소극적인 태도에 머무른 점이 아쉽다. 강연 내용을 보면 전형적인 식민사관, 과거 서북청년단 수준의 극단적 반공주의·친미주의·기독교 복음주의가 드러난다. 이정도의 사안이라면 몇 꼭지에 나눠서 심층보도를 해야 했다. 그러나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이고 깔끔한 사실보도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KBS 책임론’은 마녀사냥...문제 없지 않지만 왜곡은 아냐
중앙일보의 문창극 후보 보도, 편집국 내부 이견 없었는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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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정 한국일보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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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중립적인 입장에서 KBS 보도 자체가 저널리즘 원칙에서 문제가 많았다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언론의 평균적인 수준에 비춰봤을 때, KBS가 그 수준에서 굉장히 동떨어진 ‘악’에 가까운 보도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체 동영상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비판의 지점을 살린 좋은 보도라고 보진 않지만, 대단히 심각하게 왜곡하며 친일로 몰아간 것은 아니다. 문 전 후보자가 사인으로서 제주 4·3사건을 폭동으로 인식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현재 4·3사건은 국가 추념일로 지정돼 기념식까지 열리고 있다. 총리나 장관이 참석해 기념사를 하도록 돼 있는데 그런 자리에 적절한 사람인가. 또한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전 후보자가 총리직을 수행한다면, 거기서 오는 모순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박 대통령이 이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자기와 함께 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파악했어야 한다.
그리고 과연 문 전 후보자가 사퇴한 게 KBS 때문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러면 KBS 보도를 받아서 기사를 썼던 다른 모든 언론사들은 추가 취재도 없이 줄줄이 따라갔다는 말인가. 지금 일부 언론과 새누리당이 마치 KBS 때문에 이 사태가 벌어진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또 다른 마녀사냥이다.
사실보다 검증·확인이 중요...KBS, 맥락 살피지 않고 보도
중앙 보도 중점은 청문회 검증, ‘자사 이기주의’ 이해 못해
이규연=저널리즘 측면에서 사실 자체보다는 사실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절차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KBS 보도는 공직후보자 검증이라는 충분한 명분이 있었지만, 보도의 형식이나 내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맥락’을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KBS 보도가 모두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악마의 편집’이라고 하는 자체도 적절치 못하다. 다만 무엇이 불완전했고, 무엇이 오해를 살 수 있으며, 무엇이 명예훼손 소지가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후보자 발언 취지 핵심 담고 맥락 훼손 없도록 게이트키핑
여러 차례 반론권 요청했으나 청문회서 해명하겠다며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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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섭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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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규=60분이 넘는 동영상을 1분30초에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발췌해서 내보낼 수밖에 없었으나 최대한 핵심을 짚어서 맥락이 훼손되지 않도록 게이트키핑 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이번 보도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학계나 여론주도층에서는 보도 가치가 충분했다는 평이 나왔다. KBS 보도가 ‘짜깁기’, ‘악마의 편집’이라는 것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런 보도를 하는 매체가 더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다. 앞으로 언론보도에 심각한 위축을 가져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는데, 문 전 후보자에게 보도 당일과 다음날까지 계속해서 반론을 요구했지만 그쪽에서 청문회에서 밝히겠다며 거부했다.
그리고 KBS 보도 다음날 대부분의 언론이 일제히 같은 내용의 보도를 했다. 대부분이 문 전 후보자에 대한 비판 기사였다. KBS를 인용한 매체는 거의 없었고 자체 취재를 했더라. 그런데 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에 비판 대상이 문 전 후보자가 아니라 KBS가 됐다.
또 일부 보도를 보면 ‘정치적 의도가 있다’, ‘사장이 없어서 조직이 제 기능을 못한다’고 나오는데 터무니없는 얘기다. 저희 회사에는 4500여명의 구성원이 있고, 사장 한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무정부상태가 되는 조직이 아니다. 종전처럼 게이트키핑 과정이 소홀했다는 지적은 받아들일 수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이 동영상 ‘맥락’의 문제인데, 이와 관련해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뉴스에 전부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KBS 홈페이지 등 넓은 공간에서 전문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사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KBS의 문창극 후보자 보도를 심의할 예정이다. 고위 공직 후보자를 검증한 언론 보도를 외부기관이 심의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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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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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의 보도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바로 잡아야 한다.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바로 잡으면 가장 좋겠지만, 이것이 어렵다면 외부 심의도 필요하다.
고명섭=KBS가 언론 자유를 행사하자마자 보수 세력이 이를 문제로 지적하고 나섰다. 언론의 자유를 적폐, 사회적 암으로 보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KBS 보도에 대해 ‘악마의 편집’이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고위 공직 후보자 검증보도를 외부기관이 심의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자질검증을 핑계로 허위·과장·왜곡 보도를 했다면 심의하고 징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문 전 후보자 검증보도가 저널리즘의 원칙에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KBS 보도는 하자가 없다. 하자 없는 보도를 심의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방심위는 박만 전 위원장 시절부터 ‘정치 심의’로 많은 시민사회와 언론단체, 언론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특히 3기 위원장으로 임명된 박효종 서울대 명예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역사교과서 집필을 주도한 사람이다. 이런 분이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의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또한 방심위 여야 위원 구성은 6:3으로 여당 측이 압도적으로 많다. 지금처럼 편향된 사고를 가진 사람이 위원장을 하고 있고, 절대 다수가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조직에서 심의하는 것이 문제다.
이규연=방심위에 관한 국내 방송학자의 논문을 보면, 형식적 규제는 외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실질적 측면에서 규제가 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심위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를 통해서라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방심위를 인정한다면, 언론보도의 공정성·객관성·명예훼손에 대한 사례연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건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겠나.
송평인=당연히 심의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본다. 그러나 박효종 위원장이 너무 편향적이고 위원 구성도 여당 쪽에 유리하다면 한국언론학회 등 좀 더 중립적인 기관에 의뢰를 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희정=박만 전 위원장부터 방심위가 제대로 공정한 심의를 한 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국 정치적 견해에 따라서 야당 추천 위원들은 모두 퇴장하고 다수 인사들이 결론을 내는 식으로 이뤄져왔다. 지금의 구성으로는 방심위에서 어떤 결론이 나와도 누구도 설득시킬 수 없다. 언론 전체의, 특히 공영방송의 기준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면 한국언론학회나 한국언론정보학회, 한국방송학회 등이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구성해 제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중앙일보의 문 전 후보자 보도를 놓고 ‘자사 출신 감싸기’가 지나쳤다는 지적과 함께 우리 언론의 치부인 ‘자사 이기주의’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어떻게 보나?고명섭=중앙일보가 지난 몇 년간 소위 ‘조중동’이라는 한 묶음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평가를 받았었는데, 이를 일거에 날려버렸다. 뿌리 깊은 보수성이 확연히 드러났다.
이희정=중앙일보 내부적으로 아무런 이견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KBS 보도에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여론이 과하게 돌아간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 그렇게 일관적으로 누군가를 옹호해주는 역할은 잘 안 하지 않나. 과연 중앙일보 출신이 아닌 다른 보수인사였어도 그렇게 했을지 의문스럽다. 편집국 내에서 논의를 거쳐 이것이 검증보도의 한 방식이라는 결론이 나왔다면, 그 부분에 대해 개인적으로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KBS 보도가 마치 이 모든 사태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화살을 돌리는 것은 중앙일보가 정치적 의도와 사익의 관점에서 (기사를) 썼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해주는 것이다. 문 전 후보자가 낙마한 것은 박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 인사에 대한 비판은 생략됐다는 데 언론으로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송평인=자기 회사 사람이 억울하게 당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해서 보도한 것이 크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허원순=이 사안을 ‘중앙일보의 자사 이기주의가 드러났다’, ‘KBS에 사장이 없어서 이런 보도가 나왔다’ 등으로 보는 것은 굉장히 낮은 차원의 논의다. 중앙일보의 기사가 잘못됐다면 비판하면 되는 거다. 중앙일보가 제시하는 칼럼이든 사설이든 ‘제 식구 감싸기’라며 갖다버리는 행태는 우리 사회의 ‘정치 과잉’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선규=언론의 직업윤리 차원에서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 공영방송도 자유롭진 않지만, 민간 언론사에서는 자사 이기주의를 무시할 수 없는, 이보다 더한 한계가 있을 거라고 본다.
영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인 BBC에도 문제가 많다. 간판 앵커인 지미 새빌의 아동성폭행 전력을 두고 당시 BBC 탐사보도팀이 취재를 했는데 방송에 내보내지 못했다. 그런데 BBC 내 다른 탐사보도팀이 다시 취재를 해서 왜 보도가 나가지 못했는지까지 파헤쳤다. 이게 언론으로서 BBC가 존경받는 이유다. 언론 매체의 자사 이기주의는 각 언론사 간부급에서 논의를 해야 할 사안이다.
이규연=문 전 후보자가 31년 동안 중앙일보에 있었다는 것이 보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문제는 중앙일보의 기본적 사시에서 벗어난 보도였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보 지명 이후 중앙일보에서 문 전 후보자 관련 기사(논설 제외)가 37건 나왔다. 1면에서는 3건을 보도했다. 다른 언론사에 비해 평균 수준을 유지했다. 보도의 중점은 청문회에서 검증을 하자는 거였다. 그것이 중앙일보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합리성, 다양성에 위배됐는가. 그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저널리즘 기본 원칙과 관련해 ‘영상을 다 보고 판단하자’는 기사가 2~3건 나왔는데 이것은 자사이기주의가 아니다.
논설실에서는 매일 아침 토론이 벌어졌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제시됐다. 문 전 후보자가 자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냉정하려고 노력했다. 왜 더 공격적인 보도를 하지 않았는지, 왜 어떤 부분에서는 소극적이었는지에 대해서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논조와 가치를 허물고 보도하지는 않았다.
사회=고위공직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검증 보도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희정=문 전 후보자를 지명할 당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본인의 철학과 소신, 능력보다는 개인적인 부분에 너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문 전 후보자는 바로 이 소신과 철학이 문제가 된 것이기 때문에 신상털기로 보면 안 된다. 검증보도에 대해 일률적인 기준을 정할 수는 없다. 소신과 철학, 능력, 도덕성 등 전부 검증해야 한다. 보도 방법과 정도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송평인=저는 언론의 검증보도를 잘 보지 않는다. 물론 그 보도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방적인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글과 말의 진의를 왜곡 전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말과 글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공직을 꼭 나가겠다는 생각이 없더라도, 진정성 있는 말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허원순=공직 후보자에 대한 높은 기준이 오히려 좋은 공직자를 쓰지 못하는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언론이 의제설정이라는 틀에서 무조건 비판만을 할 게 아니라,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책임의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고명섭=고위공직자의 재산 형성 과정, 병역 문제, 위장전입 등을 검증하는 것은 당연한 기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후보자의 정신이다. 고위공직자는 역사의식과 국가관이 선명해야 한다. 기득권 집단에 매몰된 사고를 하는 사람이 고위공직자가 된다면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특정 집단을 위한 정부가 된다. 문 전 후보자가 낙마한 이유는 바로 교회 강연을 통해 극단적 역사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강선규=인사검증은 반드시 해야 하고, 그 중심에는 공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대척점에 있는 선정성·일회성·폭로성 기사가 큰 문제다. 방송은 시청률이, 신문은 구독률이 있기 때문에 선정보도의 유혹을 쉽게 받는데, 언론 윤리 차원에서 지양해야 한다.
또한 청문회도 가기 전에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하면, 청문회를 통해 그 사람의 해명을 들어야 한다.
이규연=사생활 검증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사생활이 공직수행에 어떠한 영향을, 해악을 미치는지 제시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한국 언론이 보다 심층적이고 성숙해지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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