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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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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단편을 소개한다. 하나는 한국의 젊은 작가 조해진(38)의 ‘빛의 호위’. 또 하나는 미국 레이먼드 카버(1938~1988)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우선 ‘빛의 호위’에 대해서. 문학동네가 주관하는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단편은 나치 시절의 벨기에와 뉴욕과 서울의 지금을 넘나든다. 말하자면, ‘남은 자의 예의’에 대한 나지막한 목소리다.
우선 1940년의 벨기에. 유대인 동원령이 내려지자 무명의 호른주자 장은 동료인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알마 마이어를 숨겨준다. 두 사람 모두 브뤼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단원. 장은 이주일에 한 번씩 은신처의 알마에게 빵 바구니를 들고 간다. 무명인 장의 형편이 넉넉할 리 없다. 이주일 분량이라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빵. 하지만 알마에게 힘을 줬던 건, 빵보다는 빵바구니 바닥에 깔린 장의 새 악보였다. 재능도 대단치 않은 이 호르니스트가 자신과 그녀를 위해 작곡한.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존재임을 입증했던 소박한 사례다.
장의 선의와 호의는 어떻게 이어졌을까. 알마의 아들이 노먼 마이어다. 2차대전이 끝나고 나치 광풍이 잦아들자 알마는 깨닫는다. 장에게는 본래 가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결국 그녀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장에게 알리지 않는다. 이미 장으로부터는 충분히 은혜를 입었다는 것. 그리고 어른이 된 노먼 역시 장의 예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예의를 선택한다. 어머니를 구한 장에게 직접 은혜를 갚는게 아니라, 그 자신 익명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는 것. 그리고 전재산을 처분해 구호품을 구입하고, 팔레스타인으로 향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구호품을 실은 트럭은 피격 테러를 당한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노먼 마이어의 스토리를 카메라에 담아내는 젊은 여성 사진작가가 있다. 이름은 권은. 잡지사 기자인 ‘나’는 이 촉망받는 신인을 인터뷰하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권은을 사진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초등생 소녀 권은의 아버지는 도박장 주변 쓰레기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러니 권은은 골방의 유폐된 소녀. 담임의 지시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 같은반 권은의 집을 찾아갔던 초등생 ‘나’는, 골방의 소녀를 보고 충동적 절도를 저지른다. 자기 집 장롱 속에 있는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훔쳐 소녀에게 가져간 것. 중고로라도 팔아서 살림에 보태라는 의미였는데, 소녀는 카메라를 팔지 않았다. 한 끼를 더 굶더라도, 자신의 존재의미를 알게 해 주는 세계를 찾은 것이다.
다음 차례. 카버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이런 이야기다.
느닷없는 교통사로로 어린 아들을 떠나보낸 부부가 있다. 가슴이 무너지는 부부에게 황당한 전화가 걸려 온다. 무조건 화를 내는 전화의 상대방. 예약해 놓은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왜 찾으러 오지 않느냐는 빵집 주인이다. 허.허.허. 아들이 죽었는데, 아들이 죽었는데. 부부는 분노에 떨며 빵집으로 돌진한다. 아무 것도 몰랐던 주인은 이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진심을 다해 용서를 구한다.
“내가 갓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엄마 앤은 그 진심에 갑자기 허기를 느꼈고, 그 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빵집 주인은 자신이 꽃 장수가 아니라 좋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게 더 좋았다는 것.
조선일보 주말매거진은 여행과 맛집을 주로 다루는 섹션이다. 목요일에 발행하는데, 5월 1일자를 내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의 한복판에서, 여행과 맛집은 사치로 보였다. 기사를 쓰면서, 신문을 만들면서, ‘글’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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