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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영 MBC 사회2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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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최근 “경찰에 대한 민원인들의 소란·난동 행위로 공무집행 방해에 따른 피해가 발생할 경우 민사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의 이런 방침은 실은 지난해 하반기에 세워진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경찰이 민원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을 낸 것은 901건이었는데, 같은 해 상반기 5건에 비하면 180배 급증했다.
경찰의 공무 집행을 방해하면 형사처벌은 물론 민사소송까지 갈 수 있다는 인식이 민원인들의 소란행위를 줄일 수 있을까? 경찰이 만우절(4월1일)을 앞두고 112로 거짓 신고를 할 경우 민사소송을 병행하겠다는 방침을 세우자, 2011년 69건이었던 거짓 신고 전화는 올해 6건으로 급감했다. 경찰 내부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공무원이 지켜야 할 여러 의무를 규정해 놓은 국가공무원법을 보면,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경찰도 공무원이니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공무원의 ‘의무’를 너무 당연한 ‘권리’로 누리려는 경향이 있다. 공무원뿐만이 아니다. 텔레마케터, 비행기 승무원, 식당 종업원 같은 감정 노동자나, 이른바 ‘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은근히 경시하고 하대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는 버젓이 존재한다.
광의의 의미로써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욕설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내지는 “내가 내 돈 내고 서비스 받겠다는데”이다. 오로지 나의 자존심만 중요하고 남의 자존심에는 관심도 없다. 이 사람들이 서비스, 그 자체를 돈을 받고 제공하는 것이지, 자존심까지 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
그런데 남에게 받은 모멸감이 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때가 됐다. 사회부에 와서 후배 기자들이 보내온 1단짜리 기사들을 읽다보니 ‘상대방이 못마땅하게 바라봐서’, ‘상대방이 날 무시해서’ 저질렀다는 폭력사건 기사가 어찌나 많은지 모르겠다. 인간에게 자존심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목숨처럼 아니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인가 나는 한동안 생각하곤 했다.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저서 ‘품위 있는 사회’에서 문명화된 사회가 구성원들이 서로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면, 품위 있는 사회는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고 했다. 품위 있는 사회는 구성원들이 자기가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만한 근거가 있는 조건에 맞서 싸우는 사회이며 따라서 한 사회의 제도가 그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타당한 이유를 제공하지 않을 때 그 사회는 품위 있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문명화된 사회도 아니고 품위 있는 사회는 더더욱 아니다. 사회학자 김찬호도 상대방에게 굴욕을 강요하는 천박한 우리 사회의 민낯은 ‘모멸감’이라는 내면의 뿌리 깊은 감정의 작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비슷하게 주장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은 어른이 되면 잊어버려도 되는 죽은 지혜가 된 것인가.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고 존중하며, 최소한의 품위라도 지켜주기 위해 배려하는 사회는 불행히도 현재로선 요원해 보인다.
북한 무인기가 남한 상공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중차대한 시국에 경찰이 악성 민원인에 대해 민사소송을 감행하겠다는 얘기는, 예상대로 어느 언론에서도 주목하지 않은 그렇고 그런 소소한 소식일 뿐이었다. 앞으로 경찰이 감히 국민을 상대로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냐, 공권력이 과잉금지의 원칙을 스스로 어기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물론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경찰의 발표가 동네북 같은 민중의 지팡이한테도 일말의 자존심은 있다는 것을 제발 알아달라는 마지막 하소연처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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