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하다? 문학을 산다!

[스페셜리스트│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 · 문화부


   
 
  ▲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  
 
우선 다음 일화부터.
선생님이 물었다. “입에 사탕 세 개가 들어 있다. 두 개를 더 넣으면 몇 개지?”
어린 소녀가 대답한다. “한 입 가득이요.”
이런 해맑은 소녀를 야단치지 않을 부모, 이 순진한 대답을 용납할 학교는 얼마나 남아있을까.

시집도 안가고 시집만 줄기차게 만드는 출판사 편집자 김민정(38)씨가 요즘 세상에서 그 드물다는 ‘희귀 소녀’ 중 한 명이지 싶다. 편집자인 동시에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등의 시집을 펴낸, 이제는 등단 16년차의 ‘중견’ 시인. 얼마 전에는 ‘각설하고!’(한겨레출판)라는 산문집을 펴냈다. 문화부 기자로서 당연히 이 ‘희귀 소녀’에 대한 판단이 있지만, 왠지 시인의 동종업계에서는 이 철없는 시인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사연있는 식탁’이라는 기자의 인터뷰 코너에서도 일부 소개한 바 있지만, 전화와 메일을 통해 듣게 된 그 반응들은 다음과 같다.

“책을 대할 때 그녀는 외할머니처럼 꼿꼿하고 다정하다. 나는 이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시인 김경주)
“그녀가 퍼준 사랑이라는 더운 수프. 아직 맛보지 못한 자 없으니.”(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편집자 김민정 - 생각이 늘 재빠르고 완벽하기도 해서 저자가 개입할 틈이 없다. #시인 김민정 - 그를 타락한 여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의 시를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다.”(문학평론가 황현산)

출판사를 옮겨가며 시인은 400권 가량의 책을 만들었다. 경제경영서도 아니고, 자기계발서도 아닌 시집의 출판이다. 사탕 다섯 개라고 재빠르게 셈하지 않고, ‘한 입 가득’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마음. 숫자 계산에 밝지 못한 이 산치(算癡)에 대해, 한 때 같은 잡지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씨는 자신의 폭력적 애정을 담아 이렇게 덧붙였다. ‘한 마디로 또라이’.

지금은 문학동네 편집자로 일하고 있지만, 예전의 다른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다가 그녀가 겪은 해프닝이 있다. 자신의 산문집 ‘각설하고!’에서 인용한다.
“‘시집 꼭 그렇게 하셔야겠어요? 재고 때문에 창고가 난리예요, 대체 팔리지도 않는 것 왜 이렇게 내는지, 원’ 꼿꼿했던 허리가 풀어지면서 일순 내 하이힐이 비칠, 했다. ‘야 너 어차피 죽을 것 살긴 왜 살아.’”

사는데 계산기 없다고 믿는 이 ‘자본주의 부적응자’는 “머리 새하얀 할머니 편집자가 돋보기 썼다 벗었다 하면서 시집 만드는 풍경이 가장 부럽다”고 했다. 우리 출판문화에서 흔치 않았을 풍경이다.

백지가 책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최고의 복이라는, 책 좋아하는 시인. 그는 “책은 곧 사람이다. 사람 없이 책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해도해도 끝이란 게 없고 그 끝을 가늠조차 할 수 없기에, 겸손함을 배운다. 그 겸손함으로 내 삶의 반성이 시시각각 이뤄진다”고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위의 선생님과 소녀의 일화는 도정일의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한 대목이다. 이번에 이 산치 편집자가 전력투구했던 작품. 그 책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고추를 팔면 팔수록 손해 보면서도 많이 팔았다고 즐거워하는 고추장수 이야기, 아내가 낳은 아이들 중에 진짜 자기 아이는 몇인가 같은 문제에는 도무지 신경쓰지 않는 동네 바보, 하느님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어째 꼭 하나여야 하느냐고 우기다가 목이 달아나는 얼간이, 6시가 지나면 왜 반드시 7시가 와야 하느냐는 문제로 깊은 고민에 빠지는 푼수, 이런 바보들의 이야기로 한때 풍요로웠던 것이 문학의 세계다. 그 바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사는데 책이, 문학이 ‘유용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세상.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자신의 영혼이 오염되어 가고 있음을 두려워 하는 세상. 어떤 사람들은 은퇴 후에는 시골로 가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책 제목처럼,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대부분 영원히 하지 않는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학을 사는 사람. 어쩌면 당신이 들어본 적도 없을, 김민정이라는 한 젊은 시인을 소개하는 이유다.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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