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미술관 가는 길

[스페셜리스트 | 문화] 김소영 MBC 주말뉴스부장


   
 
  ▲ 김소영 MBC 주말뉴스부장  
 
서울 도심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문을 열었으니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좋은 전시가 열릴 때 아이에게 교육 삼아 미술관 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외출하자고 하면 놀이동산에 놀러갈 것으로 기대하는 아이들의 눈에, 그림이나 조각이 재미있을 리는 만무하다. 배우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웃겨주는 어린이 공연은 괜찮다고 치자. 미술 작품은 언제나 말없이 부동자세로 침묵하고 있다.

경험상 아이가 공연을 좋아하기 시작하는 때는 대략 다섯 살 후반에서 여섯 살 무렵인 것 같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서너 살 아이들은 한 방에 모아놓아도 혼자 따로따로 논다. 유치원에 들어가는 다섯 살 정도 되어야 친구들과 간단한 의사소통이 되는데 이 때 인형극 같은 쉬운 공연부터 보여주기 시작하면 바로 좋아하게 된다. 부모 욕심에 너무 일찍 극장에 데려가면 암전을 무서워한다거나 줄거리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부지불식간에 공연 자체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이 박혀 꽤 오랫동안 극장가기를 꺼려할 수 있다.

반면 미술관은 서너 살 아이의 경우 그냥 편하게 유모차에 태우고 돌아다니면 되기 때문에 차라리 낫다.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본다. 문제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다섯 살 이후인데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힘이 남아돌겠는가. 통제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딸은 부모 말을 잘 듣는 편이라고 하지만 장난꾸러기 아들 같은 경우는 한눈 팔 새 바로 전시장에서 뛰어다니는 통에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러다 작품을 훼손이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실제로 지난 2005년 부산 벡스코에서 살바도르 달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열렸는데, 떨어지는 사과를 추처럼 잡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1969년 작품 <뉴튼에게 경의를 표함>의 추가 관람객의 장난에 떨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작품을 대여해준 스위스의 스트라튼 재단이 파손 부위가 경미하고 수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보험처리는 하지 않겠다고 밝혀 다행히 수리비만 물고 끝났지만, 이 사건은 한동안 미술계에서 관람 문화에 대한 토론이 일어나게 한 계기가 되었다.

나의 경우 전시장에 가기 전에 작가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도 해보고, 막상 가서는 중요한 작품을 앞에 놓고 쉽게 설명해줘도 시큰둥했던 아이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전시는 2009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던 <보테로전>이었다. 화려한 원색 위주로 인물을 풍만하게 그려 사랑받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 가운데 특정 작품 하나를 찾지 못해 계속 헤매는 내 모습이 좀 안타깝게 보였던지, 딸아이가 자기가 찾아주겠다며 나선 것이다. 바로 이거야! 쾌재를 부른 나는 그 다음부터 미술관에 가면 작은 도록부터 한권 샀다. 중요한 작품 열 점 정도를 추린 뒤 책 모퉁이를 접어 찾아달라고 부탁하면 아이는 전시실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뚫어지게 관찰한다.

한국화를 전공한 모 미술평론가도 아들을 데리고 초충도를 모아놓은 전시장에 가서 ‘그림에 있는 곤충을 발견할 때마다 마리당 백 원씩 주겠다’고 했더니 아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림을 보더라는 것이다. 아들이 이제는 성년이 되어서 어릴 때만큼 미술관에 잘 가지는 않지만 나중에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자신처럼 미술관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리 믿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에 가면 작품 앞에 라인이 설치된 것이 차라리 고마울 때가 많다. 작품에 손대지 말라고 몇 번이고 주의를 주려면 본의 아니게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니 말이다. 아이 입장에서도 작품이 성인 눈높이에 맞춰 달려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데, 부모가 뛰어다니지 말라고 손목까지 잡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것이다.

그래서 부모 관객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소리’에 대해서만큼은 미술관이 관대했으면 좋겠다. 작품도 못 만지고, 사진도 못 찍고, 뛰어서도 안 되고, 말도 크게 하지 못하는데, 호기심 많은 애들은 왜 데리고 오라는 것인지. 그게 어렵다면 아이들을 살살 달래면서 볼 수 있게, 어린이용 도록도 팔고, 재미있는 포토 존도 마련하고, 구경하다 쉴 수 있는 의자와, 바깥에 나오면 음료수와 빵을 먹을 수 있는 작은 쉼터라도 마련해 주던가 말이다. 아이와 미술관에 가는 길이 조금 더 수월해지길 소망한다. 김소영 MBC 주말뉴스부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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