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언론사 사찰 진상 이대로 묻히나

국가기관 개입 사건들 '꼬리자르기' 닮은꼴

국회와 청와대, 검찰과 사법부는 손을 놓았다. 그나마 남은 것은 언론이다.
국회 민간인불법사찰진상조사국조특위가 단 두 차례의 회의만 연 채 아무 성과 없이 지난 9일 16개월간의 활동을 마쳤다. 청와대는 민간인 불법사찰 재발 방지 이행대책을 마련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두 차례 권고에 “노력하겠음”이라는 답변만 보냈다.

두 차례 수사를 하고도 불법사찰의 윗선을 밝혀내지 못한 검찰은 더 그렇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난 4월 인사청문회에서 민간인사찰 사건 재수사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취임 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만약 새로운 증거가 나와 재수사 필요성이 있다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 당시 대검 차장으로서 보고도 받고 파악한 점이 있다.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도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섯달 뒤인 9월, ‘13일의 금요일’에 채 전 총장은 혼외자식 의혹으로 전격 사퇴했다. 현재 상황에서 검찰이 불법사찰 사건을 다시 들여본다는 것은 기대 난망이다.

지금 진행중인 불법사찰과 관련된 재판은 YTN 노종면 전 노조위원장 등 4명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충연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남아있다. 내년 초 쯤 선고가 예상되는 이 재판은 불법사찰의 전모를 밝혀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불법사찰 증거 인멸에 상부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은 지난달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이 확정돼 공무원직을 잃게 됐다. 증거인멸을 지시한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의 증거인멸 혐의는 인정되지 않아 파기환송됐다.

검찰 수사와 법원의 판결로 민간인불법사찰의 몸통은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영준 전 차관에서 막혔다. 아직도 ‘윗선’의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뉴스타파는 지난 13일 진경락 전 과장의 의미있는 진술을 보도했다. 증거인멸 혐의로 수감됐던 진 전 과장이 2011년 2월 면회 온 부인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각서를 써주면 폭로 포기를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강성천 당시 한나라당 의원과의 면회에서는 “사건 전모를 다 밝히면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강 의원은 “제일 위 어른이 직접 알고 계속 챙기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면회 기록에 나와 있다.

진 전 과장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언론사 사찰 관련 문건에도 등장한다.
지난해 12월 한겨레의 보도로 처음 공개된 문건에는 2009년 7월 진 전 과장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의 지시를 받아 “KBS, YTN, MBC 8월 인사에 앉힐 사람”을 보고서로 작성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나와 있다. 진 전 과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이영호 전 비서관이 그런 지시를 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진 전 과장의 지시 전달 후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 원충연 전 조사관은 ‘KBS, YTN, MBC 임원진 교체방향 보고’ 문건을 제출했으며 이 문건에는 방송 3사의 교체 간부 명단과 이유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달 후인 8월 YTN에서는 구본홍 전 사장이 갑자기 물러나고 배석규 전무가 사장 직무대리에 취임하면서 보도국장이 경질되는 등 대규모 인사가 실시됐다.

당시 구 전 사장은 “국무총리실이 YTN 사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언론사 사찰 사건 진상은 더욱 미궁 속이다. 검찰의 두 차례 수사 과정에서도 언론사 사찰 부분은 거의 다뤄지지 못했다. 언론들이 검찰 조사 기록 등을 취재해 퍼즐처럼 밝혀낸 것이 전부다.

국가기관의 불법 행위에 대한 진상규명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지리멸렬에 이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 국정원·군 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의혹은 모두 비슷한 패턴의 사건이 연속되고 있다는 말이다.

사후처리에서도 민간인불법사찰 사건수사가 ‘꼬리자르기’라는 비판을 듣는 것처럼 나머지 사건들도 ‘개인적 일탈’ 차원에서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규명은 대선을 치른 지 1년이 지나도록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데다 17일 국방부 조사단이 이모 국군 사이버사령부 심리단장과 단원 20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군 검찰에 넘길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자식으로 지목된 소년의 개인정보 유출 혐의에 관련된 조오영 청와대 행정관과 조이제 서초구 국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돼 검찰 수사는 조 행정관 선에서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민간인불법사찰 사건을 집중취재하고 있는 뉴스타파의 한 관계자는 “불법사찰, 채동욱 등 국가기관 개입 사건의 공통점은 의혹의 중심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이라며 “민간인 사찰사건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실무자들이 들켜도 보호해준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사권이 없는 언론이 나서도 이 정도까지 밝혀내는데, 임무를 방기한 검찰이 결국 자기 수장까지 사찰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장우성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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