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식이 특종 낚았다'
옥천 조폐창 구조조정 때는 의혹제기 소홀...뒤늦게 호들갑 아쉬워
검찰이 조폐공사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진형구 전 공안부장의 발언 이후, 의혹의 근거와 조폐공사 구조조정의 불합리성을 파헤치는 언론보도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조폐공사의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조원의 분신과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탈퇴선언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올해 초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언론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단신성 스트레이트 16건(전국지 10개사)으로 처리됐을 뿐이었다. 지난해 9월초 조폐공사 노조가 임금협상 결렬로 파업했을 때(스트레이트 30건, 심층 2건, 사설 1건)보다도 적은 보도량이다. 한겨레신문과 MBC 2개사만이 각각 사설(98년 12월 28일)과 시사매거진 2580(99년 3월 7일)을 통해 의혹을 제기하고 사태의 중요성을 짚었다.
심지어 전 공안부장이 문화, 한겨레, 한국일보 기자들에게 문제의 발언을 한 이후 일부 언론사 데스크들은 정보보고를 받고도 확인취재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또 한겨레가 8일 시내판, 문화일보가 이날 석간부터 1면 톱으로 올린 반면 한국일보는 간부들과 기자들 간 우여곡절 끝에 사회면 사이드기사로 처리해 내부에서 비판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 사이에선 '긴장된 비판의식'이 결여됐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전 공안부장의 발언 이후 톱 등 주요기사로 다뤄진 '시민단체 진상보고서'는 이미 지난 3월 초 각 언론사에 릴리스된 내용이었다. 노동정책연구소, 참여연대, 민변, 민주노총은 2월 한달 간 직접 옥천창을 조사한 후 ▷10년째인 옥천창을 25년된 경산창과 합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며 ▷수백억원의 통합비용에 비해 절감효과는 70억원밖에 안돼 부적합한 구조조정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또 파업 돌입 직전까지 조폐공사 경영진이 통폐합에 반대했었다는 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제기한 문제는 MBC 시사매거진팀 '이상한 구조조정'편(3월 8일 방영) 외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노동부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조폐공사가 임금협상 때문에 처음 파업했던 9월초만해도 현대자동차 사태가 끝난지 얼마 안된 때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었는데 이후 별 관심을 갖지 못했다"며 "문제가 불거지면 경쟁적으로 기사화하다가 어느 순간 관심이 식어버리는 떼거리 저널리즘, 경마 저널리즘의 속성 탓"이라고 지적했다.
한 사회부 기자는 "한겨레 기사는 문제의식에서비롯한특종"이라며 "이번 건처럼 물증을 얻기 어려운 사안에서 당사자의 증언은 결정적인데 기자들이 취중발언은 기사화하지 않는 관행 등을 감안하다가 판단에 혼동이 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대전 주재기자는 "당시 더 진지하고 심각한 자세로 캐보지 못한 데 대해 후회한다"면서 "그러나 옥천창이 거의 매년 파업이 벌어지는 곳이라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배경설명 없이 사태의 중요성을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노동, 시민단체도 이젠 좀더 유연한 자세로 언론을 도구로 이용할 줄 알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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