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노래하는 '봄의 문학'

[스페셜리스트 | 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문화부


   
 
  ▲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  
 
작가 최인호가 한 달 전 세상을 떠난 후, 이런저런 기사와 칼럼을 썼다.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 중 한 명이었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작가와의 형평을 고려하면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은 부담도 없지 않았다. 이 글은 그 과잉 아닌 과잉에 대한 변명이자 한국문학에 대한 작은 바람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작가 사후 일주일 정도 지나 기자협회보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최인호와 신문과의 인연을 특집으로 하는 기획이라는데, 당연히 내게는 조선일보와의 인연을 궁금해했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기억을 전했는데, 고인보다 한 세대 넘게 어렸을 그 담당 기자는 그 중 조선일보 연재소설이었던 ‘별들의 고향’의 인기 관련한 에피소드를 재미있어 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병원 간호사들끼리 그 연재소설을 먼저 읽으려고 신문 쟁탈전을 벌였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단행본으로 나온 책도 아니고, 연재소설 때문에 신문을 서로 먼저 보려고 싸운다? 지금뿐만 아니라 당시에도 드문 경험이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 ‘놀라운 열광’을 완벽하게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타인의 방’ 해설을 썼던 숙명여대 김주연 명예교수의 최근 한 글에서 실마리 하나를 찾았다. 바로 최인호의 문학이 ‘가을의 문학’이 아니라 ‘봄의 문학’이라는 대목이었다.

전통적으로 한국문학은 보통 ‘가을의 문학’으로 불린다. 그 문학적 특질이 환희나 긍정보다 한(恨), 우수 등 부정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물론 각성이나 성찰을 통한 영혼의 성장이라는 차원에서, 이 ‘가을의 한국 문학’이 끼친 공로와 기여는 폄하 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지나치면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인 법. 쾌활한 문학의 즐거움에 아쉬워해 온 독자들에게 ‘봄의 문학’은 늘 안타까운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김 교수는 “최인호의 홀연한 등장은 이러한 결핍을 해소시켜주는 단비와도 같아서 그의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독자들이 열광하였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작가세계와 그 폭발적인 수용의 힘은 그의 작품들을 영화로, 연극으로 확장시켜서 문학예술이 총체적으로 어울리는 행복한 순간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사하였다는 것.

스승 같은 작가가 있고, 친구 같은 작가가 있다. 최인호는 후자였다. 개구쟁이고 말썽꾸러기지만, 함께 있으면 즐거운 악동. 한 세대 어린 후배 작가들과 자주 어울리고 그들의 재능을 ‘질투’했다는 이야기를 다른 칼럼에서 쓴 적이 있지만, 그 젊은 후배들 역시 선배가 지닌 이 독특한 재능을 샘냈다.

최인호는 “나는 소설가다. 나는 재미있고 화려하게 살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도 미워할 수 없게, 아니 좋아하게 만들 것이다”의 삶을 산 작가였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우리에게는 ‘봄의 문학’이 귀했다. 단순히 순간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당의정 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 겪고 시대의 고통을 증거하는 문학도 중요하지만, 소시민과 서민의 빡빡한 일상을 위로하는 다정하고 유쾌한 문학의 자리도 필요한 법. 봄의 문학과 가을의 문학이 균형 잡힌 생태계를 이뤘으면 좋겠다. 가을의 중턱에서 봄의 문학을 노래하는 뜬금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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