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핑계로 포퓰리즘 규제 넘쳐날라

[스페셜리스트 | 금융] 이진명 매일경제 기자 · 금융부


   
 
  ▲ 이진명 매일경제 기자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까마득히 몰랐던 동양그룹 사태가 국정감사 ‘핫 이슈’로 떠올랐다.

5만명에 육박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동양그룹 계열사의 회사채와 CP(기업어음)에 투자했다가 2조원이 넘는 돈을 떼이게 생겼단다. 분통터질 일이다.

저축은행 사태와 달리 회사채 CP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서민이 아니라 ‘좀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돈 앞에 부자와 서민이 다르지 않다. 생돈 떼이는 마당에 재벌인들 ‘허허’ 웃어넘기겠는가. 게다가 5만명이라는 엄청난 피해자 중에는 애끊는 사연도 부지기수다.

동양그룹 5개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꼭 보름만에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투자자들의 분노와 어우러져 국회의원들도 덩달아 흥분했다. 대주주 책임부터 금융감독원의 감독 소홀, 금융위원회의 규제 허점, 금산분리 강화, 대주주 적격성 심사 확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CP 제도 개선 등 동양그룹 사태를 둘러싼 온갖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동양그룹 사태의 본질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동양그룹 계열사가 안전하지 않은 회사채와 CP를 안전한 것처럼 속여서 팔았느냐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관련자를 처벌하고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해당 투자자들이 배상받아야 한다.

둘째,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법원이 판단해서 청산할 건 청산하고 살릴 건 살린다. 청산한 기업은 ‘빚잔치’를 통해 채권자들에게 최대한 투자금을 돌려줄 것이고, 기업이 회생하면 절차를 밟아서 투자금을 되찾게 된다.

셋째, 대주주가 경영권 유지를 위해서 투자자들을 속인 것이 있다면 책임을 물어 처벌하고 손해배상을 통해 사재를 추징해 배상을 받아야 한다.
이런 시장의 질서가 엄격하게 적용되도록 감시하는 것이 정부와 국회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하지만 국회의 ‘오버’가 걱정스럽다. 국민의 분노는 포퓰리즘을 부르고 포퓰리즘은 표를 낳는다. 표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이 이런 절호의 찬스를 놓칠리 없다. 동양 피해자들의 분노를 기회로 포퓰리즘 정책을 앞뒤 안가리고 쏟아놓을까 우려된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그랬다.
부산저축은행에 돈을 맡겼다가 손해를 본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국회의원들의 아우성이 하늘을 찔렀다. 예금자보호 한도가 엄연히 5000만원으로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도 모든 걸 무시하고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 이면에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이 전략지역이니 부산 민심을 얻어야 하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설마하니 전국민의 세금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해 동양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고 할까 겁난다. 과거 대우채 경험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이는 피해자 구제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시장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그나마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는 부산이라는 특정지역에 국한됐지만 동양 피해자는 전국적으로 퍼져 있어 특정 지역 국회의원들이 ‘총대’메고 나서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제도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있겠지만 시장의 자율성을 옭아매는 규제는 자제해야 한다. 금융회사들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묶어버리면 멀쩡한 기업들은 어디서 자금을 구할 것이며 은행 예금에 만족 못하는 투자자들은 어디서 수익을 낼 것인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문제지만 외양간 갖고는 안되겠으니 아예 소를 키우지 말자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선거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쉽게 빠져드는 오류 중 하나다. 이진명 매일경제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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