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의 편집권 간여, 이에 항의하는 편집국 간부들에 대한 보복인사, 편집국 내부와 노조의 반발, 노조간부에 대한 징계통보, 차장단의 입장표명…. 최근의 국민일보 사태는 한국언론에서 자본과 편집권의 관계라는 문제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사건의 일차적 원인은 조희준 회장의 개인적 스타일에 있는 듯 보인다. 조 회장은 만민교회 신도들의 MBC난입 기사를 가십 정도로 처리하도록 지시했는가 하면 SBS 프로그램 비판기사를 빼도록 하는 등 누가 봐도 명백한 편집권 침해행위를 벌였다.
편집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논의를 벌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미디어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던 조 회장의 말을 빌어보자.
“편집권 독립이란 신문사 내외로부터 영향을 받아 기사의 방향을 왜곡시키거나 사실보도 내용을 축소 또는 확대시킴으로써 독자를 호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신문사 내의 안전장치를 말합니다.”
이 말은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해서는 신문사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영향력, 가령 사주의 개인적 취향이나 부당한 명령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교회신도들의 방송사 난입사건을 축소하도록 지시한 것이 과연 '독자들의 알 권리'에 합당한 행위인지 묻고 싶다.
해당 지면의 궁극적 책임자로서 혹은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언론사주가 지면을 위해 이런 저런 충고와 주문을 하는 것마저 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 주문은 어디까지나 편집국의 자율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전제 아래 포괄적인 수준에 그쳐야지, 특정 기사나 사안에 대해 '밤놔라 대추놔라' 식의 간여는 곤란하다. 사주의 무리한 주문을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따랐던 편집국장과 간부들도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노조가 편집국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사태의 바탕에는 사회적 공기(公器)인 언론사를 '내 것'으로만 보려는 언론자본의 오만하고도 시대착오적 발상이 깔려 있다. 국민일보 경영진은 편집권 독립 문제와 관련, '소유과 편집의 분리'라는 원칙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 인사와 노조간부 징계방침에 대해서도 이를 철회해야 한다. 조 회장은 국민일보의 '밑바닥 정서'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 할 것이다.
언론사와 지면의 '사유화'는 사실 국민일보뿐만 아니라 여타 족벌 언론사에서도 너무나 쉽게 찾아 볼 수있다.현재 대다수의 족벌 언론들은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명분으로 편집방향과 구체적 지면제작에 언론사주들의 입김이 여과없이 투영되는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지면은 '만인의 독자'가 아닌 '일인의 독자'를 의식해 제작된다는 비판마저 받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언론사주의 전횡과 독선을 막을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시민단체가 언론사의 개인소유 지분 제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간법개정을 추진하다 국회의 소극적 태도로 법안개정이 지지부진한 바 있다. 국민일보 사태는 이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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