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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명 매일경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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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 털이 뭐 어쨌다고.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의 ‘거위 털’ 발언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세제개편안을 내놓고 증세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느라 “이번 세제 개편은 거위에게서 고통없이 털을 뽑는 취지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된서리를 맞았다. 세제 공무원들 사이에 흔히 회자되는 얘기였으니 별 생각없이 뱉은 말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다. 어차피 뽑아야 할 털이라면 안 아프게 뽑는게 거위한테도 좋고 뽑는 사람도 편하다.
일단 설화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으니 조원동 수석을 더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말은 얄궂게 했지만 135조원이 필요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수행하려면 세금을 더 걷지 않고는 안될 판이었다.
그나마 정부 지출을 줄여 84조원을 아끼고, 세금으로는 51조원만 조달하겠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비과세 혜택을 줄여서 세원 18조원을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이번 세제 개편안은 비과세 혜택을 줄여서 12조원을 조달하는 내용이었다. 필요한 복지 재원 135조원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요, 아직 본격적인 증세는 시작도 안한 셈이다.
복지를 하려면 세금이 필요한 게 당연한 일인데 국민들이 왜 이리 민감해졌을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세금 더 걷는 게 문제가 아니라 누구한테 어떻게 걷을 것인가를 섬세하게 하지 못한 행정부의 투박함이 하나고, 복지공약을 남발하며 생색은 다 내놓고 재원이 필요하다는 얘기에는 입을 닫아버린 정치권의 무책임이 두번째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불특정 다수 국민의 돈을 가져다가 정권의 이름으로 복지를 하려는 의도가 못마땅해서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그리고 반값등록금까지. 대표적인 포퓰리즘으로 손꼽히는 정책이다. 무상급식에 1조8000억원, 반값등록금에 7조7000억원이 든다고 했다. 이 재원 마련을 둘러싸고 국민들의 저항이 적지 않았다.
국민의 불만은 세금 몇 푼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세금 더 내는 것이 달가운 일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아이들 밥 먹이는 일에 그렇게 인색한 부모는 없다. 꼭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똑똑하지만 가난해서 대학 못가는 이웃집 아이를 위해 등록금을 쾌척할 사람도 많다.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못받는 노인을 위해 십시일반 돕자는 호소를 애써 모른 척할 국민은 많지 않다. 경기가 좋든 나쁘든 말이다.
진짜 문제는 정부가 복지를 명분으로 중간에 끼어들어 누가 돈을 내고 누가 혜택을 보라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였다.
실제로 많은 돈이 기부금이라는 이름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남몰래 봉사하는 사람들이 넘치고 기업들도 사회공헌이라는 이름으로 거금을 내놓고 있다.
여기다 대고 복지가 필요하니 세금을 더 내놓으라고 하면, 민초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기부와 봉사 대신 권력의 이름으로 정권만 생색나는 복지를 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중산층 국민이 저소득층 국민을 직접 도와주는 걸 굳이 정부가 중간에 가로채서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세율을 높이면 기업은 기부금부터 줄인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주머니가 얇아지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 기업, 한국 중산층이 특별히 탐욕스러워서가 아니라 세계 어디든 비슷하다.
자유주의 고전 경제학에서 아담 스미스와 리카르도는 경제 성장을 정부보다 민간에 맡기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근거에서 ‘작은 정부’를 주장했다. 지금에 와서는 복지도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복지 부문에서도 ‘작은 정부’가 효과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를 향해 ‘복지 공약 구조조정’을 제안하고 있다. 이참에 당장 급하지 않은 복지는 과감하게 민간에 맡겨보면 어떨까. 민간이 더 잘할 수도 있다. 왜?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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