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소유권 논란…미디어렙법 통과 후 다시 수면 위로

프레스센터의 어제와 오늘



   
 
   
 
한국프레스센터와 남한강연수원(현 코바코연수원) 소유권 문제가 언론계의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현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12~20층을 소유하고 있는 한국프레스센터와 역시 코바코가 소유하고 있는 남한강연수원을 애초 설립 취지에 맞게 소유권을 이전해야 한다는 요구가 다시 제기됐기 때문이다. 코바코는 프레스센터와 연수원이 법적으로 규정된 코바코의 재산이라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이에 본보는 그동안 여러차례 소유권 문제가 논란이 됐던 프레스센터의 역사와 현재의 논쟁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되짚어본다.


한국프레스센터의 역사는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프레스센터의 모태가 된 신문회관 건립을 발의한다. 1957년부터 편집인협회를 비롯해 한국신문발행인협회(한국신문협회 전신) 등 언론단체들이 발족했지만 변변한 사무실도 없는 형편이었다. 이에 ‘언론인들의 보금자리’가 필요하다는 언론계 여론을 반영해 신문회관 건립 논의가 물꼬를 튼 것이다. 하지만 발의 4개월 뒤 4·19혁명이 일어나 사회적 격변기를 맞게 된다. 건설 재원 마련도 만만치 않았다.

‘프레스센터 모태’ 신문회관 건립
소강상태를 보이던 신문회관 건립 논의는 5·16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뒤 재점화됐다. 박정희 정권은 난립하던 신문·통신사 시장을 정리하고 살아남은 언론사는 정부가 적극 지원해 언론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웠다. 여기에는 진보 성향의 민족일보 폐간, 조용수 사장 사형 등과 같은 언론탄압과 함께 언론인들의 불만을 달래려는 ‘당근과 채찍’ 양면의 전략이 숨어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당시 군사정부는 언론인들의 숙원인 신문회관 건립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게 정설이다.

군사정부는 4·19혁명 당시 시위대에 불탄 태평로 서울신문 사옥에 터를 잡고 착공에 들어가 6개월만인 1962년 5월 지하 1층, 지상 3층의 신문회관을 완공했다. 정부는 당시 돈 1300만원을 들여 건물을 짓고 이를 언론단체들이 설립한 사단법인 한국신문회관에 양도했다. 완공 첫해 편집인협회, 발행인협회, IPI(국제언론인회), PLO(유엔군 신문연락실), 신문윤리위원회가 입주했고 이후 한국기자협회, 관훈클럽이 들어서게 됐다.

신문회관은 정부의 지원으로 생겨났지만 언론인들의 연대를 위한 마당이 됐다. 1964년에는 한국기자협회 설립의 계기가 된 ‘언론윤리위원회법’ 철폐를 위한 전국 언론인대회가 열리는 등 언론자유 수호투쟁을 위한 근거지 역할을 했다.

1969년 새 회관 설립 제기
프레스센터 건립은 이후부터 꾸준히 거론되기 시작한다. 언론인들의 교류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된 신문회관은 부족한 면이 많았다. 신문회관의 소유운영권을 가졌던 언론단체들은 정부지원금도 중단돼 결혼식장, 지하다방 등을 운영해 벌어들인 돈으로 수익금을 배분했지만 늘어나는 활동과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살림도 빡빡했다. 도시계획에 묶여 증축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1969년부터 한국기자협회와 신문협회는 신문회관 운영 합리화 및 새 회관 건립을 추진했다.

1974년 창립된 한국방송협회도 방송회관 건립을 모색해 정부 일각에서조차 ‘프레스센터’ 건립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1978년 방송협회가 총회에서 방송회관 건립을 결의하자 새 신문회관 설립 논의와 맞물려 1980년 신문·방송을 아우르는 ‘신문방송회관’ 공동건립이 구체화되기 이르렀다.

이에 따라 1980년 신문회관 이사장은 홍진기 중앙일보·TBC 사장이 선출됐다. 신문과 방송을 함께 경영하는 홍 사장이 ‘신문방송회관’ 건립을 추진할 이사장으로 적격이라는 여론에 따른 것이다.

서울신문 신사옥 건축도 계속 추진되던 중이었다. 서울신문은 4·19혁명 당시 사옥이 불탄 뒤 복구해 운영해왔지만 신사옥 건립이 숙원사업이었다. 서울신문은 유신정권 시절 신사옥을 짓고, 그 안에 신문회관을 흡수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하기도 했다.

언론계 숙원 프레스센터 완공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뒤 등장한 전두환 정부는 12·12 쿠데타와 5·18 광주학살, 언론통폐합 등으로 인정받지 못한 정통성을 상쇄하려는 듯 언론인들의 후생복지 지원에는 적극성을 보였다. 1981년 설립된 한국방송광고공사는 이 같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 ‘종합프레스센터’ 건립 계획을 세웠다.

결국 신문·방송계-서울신문-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서울신문 신사옥과 한국프레스센터가 한 건물로 건립된 것이다. 서울신문과 정부 몫으로 한국방송광고공사가 공사비를 각각 227억원, 213억원씩 분담해 1982년 4월 착공에 들어가 1985년 4월 준공되기에 이른다.

신문회관을 소유했던 사단법인 한국신문회관은 철거될 건물을 서울신문에 양도하고, 한국언론회관으로 확대개편하면서 일체의 재산을 인계했다. 또 정부에 신축될 프레스센터에 무상입주를 확약받기 위한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당시 건의서는 “한국신문회관의 기본재산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새로 건립될 프레스센터에 신문회관(각 입주 언론단체 포함)이 필요로 하는 스페이스(평수)를 무상으로 공여한다는 확약을 받는 조건으로 현 회관을 양도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광표 문화공보부 장관은 이 같은 요구를 구두로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건립된 한국프레스센터는 1~11층은 서울신문이, 12~20층은 코바코가 소유권을 가졌다. 코바코가 소유한 층은 한국언론회관이 운영권을 부여받았다.

자율권 위축과 소유권 논란
하지만 정부가 예결산심의권을 비롯해 언론회관 이사장 임면권을 행사하는 등 신문회관 시절에 비해 언론단체들의 자율권은 크게 위축됐다. 때맞춰 방송협회는 독자적인 방송회관 건립 착수에 들어갔다.

이에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한국기자협회를 주축으로 새 회관 건축을 포함해 프레스센터의 소유권 이전 등의 논의가 제기돼 당시 정부와 김문원 한국언론회관 이사장도 공감을 표시하는 등 논의가 진전됐지만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이후 한국언론회관은 한국언론연구원, 언론인금고와 통합돼 한국언론재단(한국언론진흥재단 전신)으로 재출범해 프레스센터의 일부 층 운영권을 물려받았다.

2007년에는 한국언론재단이 국정감사 때 받은 지적을 이유로 입주 언론단체에게 임대료를 징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프레스센터 소유권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당시 기자협회는 대의원대회를 통해 신문회관 때부터 실질적 주인이었던 언론단체들이 소유권을 회복해야한다며 ‘프레스센터 되찾기 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지만 노무현 정부 말기 기자실 폐쇄 등으로 경색된 대정부 관계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논의는 또 수그러들었다.

“설립 취지” 대 “법적 승계”
한동안 수면 아래에 들어갔던 프레스센터 문제는 지난해 2월 미디어렙법이 국회 통과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미디어렙법에 따라 코바코의 관할기관이 문화부에서 방송통신위원회로 변경되면서 코바코의 재산 관리 문제가 대두된 것이었다.

미디어렙법에 따라 무자본특수법인 한국방송광고공사는 주식회사형 공기업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로 바뀌었다. 코바코의 주식 100%를 소유하게 된 기획재정부는 코바코의 자산을 국고로 환수해 프레스센터, 양평 남한강연수원(현 코바코연수원)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소유권을 두고 방송회관은 코바코에 남기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단체들도 이 방안을 지지했다.

방통위와 코바코는 이에 반발했으며 미디어렙법에 신설되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이전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자산을 포괄 승계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을 근거로 삼았다. 이 법에는 부칙으로 법 발효 3개월 내에 기재부 장관-문화부 장관-방통위원장이 자산 운영 문제를 추가 협의한다고 명시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소강국면을 거쳤던 논란은 송희영 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조선일보 논설주간)이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과 각 언론사 논설·해설위원실장과의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서 “프레스센터와 남한강연수원을 언론인들에게 돌려달라”고 요청하면서 또 본격화됐다.

프레스센터와 남한강연수원의 건립은 애초 언론단체의 요구를 정부가 수용하면서 이뤄진 것이며 공익자금이 투입된 공공의 자산이며, 방송광고판매에 역할이 한정된 코바코의 개별 자산으로 운용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또한 프레스센터가 설립 취지대로 언론단체, 언론사들이 제대로 이용하려면 소유권을 코바코 개별 기관에 둘 것이 아니라 국가에 두고 장기적으로 소유권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SBS가 민영미디어렙을 독자 설립하면서 경영 여건이 악화된 코바코는 “프레스센터와 남한강연수원의 소유권은 방송회관, 광고문화회관과 함께 미디어렙법에 의해 코바코로 포괄 승계 완료된 것”이라며 “소유권을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프레스센터·연수원의 운영을 개선해 언론단체들의 이용과 편의에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위임된 프레스센터 관리운영권도 소유권자인 코바코가 환수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남한강연수원 소유권 논란의 쟁점

남한강연수원(현 코바코연수원)은 애초 언론인들의 교육·휴양시설로 구상됐다. 코바코가 비용을 투입해 1984년 12월 1차 완공됐다. 소유권과 운영권은 모두 코바코가 갖고 있다.

언론단체들의 주장의 핵심은 연수원의 설립 취지를 되살리기 위해 언론정책·연수를 고유 업무로 한 정부기관이 소유·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이상일(새누리당)의원이 코바코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남한강연수원의 이용률은 일반기업이 50.7%였고 언론계·광고계는 13.5%에 그쳤다. 이 의원은 “언론인 이용률이 저조한 이유는 방송과 영상, 뉴미디어 연수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전무하고 차별화된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라며 “언론인 연수와 복지 증진을 위해 설립된 본연의 가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 17개 언론단체들은 미디어렙법이 통과된 지난해 2월 정부에 낸 건의문에서 “언론계에 유일하다시피한 연수시설이 언론인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며 “언론정책을 총괄하는 문화부와 언론인 연수교육을 전담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남한강연수원을 소유 운영하는 것이 설립목적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코바코는 이 연수원이 언론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코바코의 법적인 고정자산이라고 반박한다.
코바코는 “연수원은 부지매입과 건립 비용을 방송광고 수익금으로 충당한 공익 인프라시설이며 건립 목적 또한 언론계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광고업계, 코바코 자체 연수원 기능까지 포함한 종합 연수원이라는 것”이라며 “언론계에 이용료 할인 등 편의제공을 할 수 있지만 소유권 이전은 법적으로도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코바코 노조도 지난달 낸 성명에서 “코바코연수원은 법률이 정한 명백한 코바코의 자산이며 방송과 광고진흥을 위한 국가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국유 재산”이라며 “국가 자산을 일부 언론인과 소수의 언론단체 등 사적인 집단이 소유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주장했다. 장우성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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