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해 초심으로 복귀…'자부심 주는 언론' 되겠다"

프레시안 협동조합 박인규 초대 이사장



   
 
   
 
‘깊이있는 진보언론’의 등장이었다. 스페셜리스트들의 장문 심층 인터뷰, 현안에 대한 거시적인 분석,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을 결합한 새로운 시도 등으로 21세기의 들머리에 탄생을 알린 프레시안은 한국 언론계에 신선한 충격을 일으켰다. 황우석 사태를 비롯한 우리 사회 혼돈의 현장에서 이 청년 진보언론은 ‘작지만 멀리 비추는 등대’였다. 그 프레시안이 또다른 실험에 돌입했다.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출범이 그것이다. 창간의 산파 중 한 사람이었던 박인규 프레시안 협동조합 이사장은 ‘제2창간’을 맞아 한국 독립언론의 해묵은 화두인 소유양식에서부터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기자협회보는 창립총회를 마치고 정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6월2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그를 마주했다.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정식 전환되는 시점은.
“지난 7일 협동조합설립신고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신고필증이 나오는데 한 달 정도 걸린다.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경우는 (일반기업까지 포함) 처음으로 알고 있다.”

-프레시안이 올해로 창립 만 12년인데 협동조합 전환 고민은 언제부터 했나.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연말부터다. 사실 창립 때부터 주식회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중간에 한두 번 협동조합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여건이 안 됐다. 모든 인터넷언론이 그렇듯이 수익모델에 어려움이 있었다. 2007년 말 ‘프레시앙’이 생겼고, 2009년부터는 네이버 등 포털 수익이 도움이 됐다. 그런데 트래픽을 신경쓰다보니 정체성에 문제가 생겼다. 작년 하반기부터 (경영이) 어려워질 징후가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11월쯤 한 기업에서 제안이 왔다. 경영 능력과 편집 능력을 결합해보자는 것이었다. 주주들 간에 거의 합의가 이뤄졌고 12월 초쯤 소속기자들에게 얘기를 했다. 격렬한 반대는 없었지만 ‘특정 기업을 정해놓고 갈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더 나은 방안을 토론하다가 협동조합 얘기가 나왔다. 지금 문제는 경영 안정인데 시민들이 참여하면 나아질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렇지만 협동조합에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다. 주주가 많아지면 편집권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견을 조정하는데 3개월 정도 걸렸고 4월에 협동조합 전환을 최종 결정했다. (협동조합 전환이) 워낙 처음 있는 일이라 약간의 시행착오들을 겪고 있다.”

협동조합 출범으로 ‘제2창간’ 선언…트래픽 부담 줄이고 심층 콘텐츠로 승부

-현재까지 조합원 현황은.
“지난 5월 3일 전환총회를 하면서 조합원을 희망하는 분들의 신청을 받았다. 18일부터 받기 시작해 4000명 정도가 가입의사를 밝혔다. 구독료를 지급하던 3000여 명의 프레시앙 일부와 새로 들어오신 분들을 합쳐 그 정도 된다. 아직 예비조합원인 셈이다. 제가 말한 시행착오가 이런 거다. 실제 조합원 가입에 관한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프레시안 협동조합이 전례가 없는 측면은 또 있다. 예를 들면 AP통신과 같은 외국의 협동조합 언론은 언론사가 조합원인 형태인 이른바 ‘직원 협동조합’이다. 우리는 소비자나 독자 조합원이 들어와야 하는 ‘다중 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인데, 지금까지 이런 모델이 없었다.”

-조합원 목표는 몇명인가.
“연말까지 1만명 정도. 이 정도면 기본적인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합원 1만명이 되면 광고를 없애겠다고 했다.
“이른바 ‘혐오광고’부터 없애겠다. 기업광고는 유지한다. 어차피 (기업광고는) 기본적으로 많지 않다.”

-초기 적자가 불가피할 텐데 언제쯤 흑자로 전환할 수 있을까.
“되도록 올해 안 흑자 달성이 목표다. 문제는 이런 거다. 생협같은 경우는 조합원이 매달 돈을 내면서 손에 잡히는 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기사 콘텐츠는 우리나라에서 일단 공짜다.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줘야하는데 언론은 기본적으로 공공재 성격이라 고민이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독립 언론사가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다. 외국에 비하면 시민이 언론에 기여하는 부분이 적다.”

생존문제 연연해 정체성 훼손하지 않겠다

-협동조합 전환 후 논조 변화도 있을 수 있나.
“생존문제에 연연해서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공공의 이익에 더욱 부응할 수 있는 보도를 하겠다. 요즘 협동조합이 붐이다. 승자독식과 경쟁 지상주의를 극복할 대안이라고 한다면 협동조합 경제를 확산시키는 언론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의 강점은 깊이와 분석력있는 콘텐츠인데, 요즘 일반 인터넷신문과 차별성이 적어졌다는 지적이 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영향이 있었을 거다. 또 그동안 깊이 있는 논평, 분석을 해온 우리 필자와 포맷을 한겨레, 경향 등 다른 언론에서 많이 흡수해갔다. 새로운 필진과 포맷을 계속 발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초기의 참신함이 떨어진 것 같다.”



   
 
   
 
-협동조합 전환으로 포털에 대한 부담은 덜 것 같은데.

“이제 트래픽에 대한 부담은 줄이고, 문제의식 있고 깊이 있는 재야의 전문가를 발굴하겠다. 트래픽이 높다고 좋은 기사는 아니다. 앞으로 트래픽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앙 위원회’ 등 조직 운영 방향은.
“조합원 총회는 인원이 많아서 어렵고 대의원 총회를 만들 것이다. 대의원 총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고, 편집위원회가 편집방향을 맡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민들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프레시앙위원회, 즉 소비자 조합원의 모임이다. 기존의 프레시앙이 후원회원에 머물렀다면 소비자 조합원은 후원이면서 주인이기도 하다. 독자 조합원들이 너무 많아지면 편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이사회는 직원대표 5명·소비자 대표 5명, 5대5로 구성했다.”

-협동조합이 되더라도 기성언론사들에 비해 규모에서 뒤지는데 영향력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주류가 되긴 힘들 것이다. 협동조합의 발상지가 강원도 원주다. 그런데 원주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율은 0.1%밖에 안 된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밝은신협’이라는 곳이 있는데 다른 은행들이 모두 신경 쓴다. 프레시안은 작지만 옳은 문제제기를 계속적으로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앞으로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우리나라 언론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처음처럼’이란 화두가 중요하다. 2000년대 오마이뉴스가 나온 배경은 기존 언론이 지나치게 기득권과 한 몸을 이뤄 특권화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기자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반면 우리가 프레시안을 만든 문제의식은 기존 언론이 너무 진부하고 표피적이고, 깊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보통 ‘진보는 좋고 보수는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옳지 않다. 사회가 민주화를 넘어 다원화되면 흑백논리는 적용되지 않는다. 의약분업을 예로 자주 드는데, 많은 사람들이 ‘의사가 악(惡)인가, 약사가 악인가’라고 묻는다. 정답은 쉽지 않다. 의사나 약사뿐만 아니라 의료보험을 운영하는 정부, 국민들 생각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프레시안은 보수와 진보를 가르지 않는 ‘깊이 있는 보도를 하자’는 걸 방향으로 삼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을 찾아냈다. 진짜 독립적이고 실력있는 사람들을 통해 담론의 광장을 형성하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사실 독립적, 중도적이고 심층적인 보도다. 모든 시민들이 참여해 해법을 고민하는 광장을 만드는 것이다. 요즘 프레시안의 심층성이 많이 약해진 것은 인정한다. 협동조합으로 정식 출범하면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

‘입장 보다 깊이’ 설득하는 진보언론으로

-협동조합화를 계기로 좀 더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겠다는 뜻인가.
“우리는 ‘입장’보다는 ‘깊이’다. 진보를 표방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닥친 문제를 얼마나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 부분을 약간 게을리한 측면이 있는데 다시 살려보고 싶다. 이명박 정부 때는 항의하고 저항하는 것이 많았는데, 사실 이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기자들의 입장도 있지 않겠나.
“우리 기자들은 아직 젊다. 경영적인 이유 등으로 원치 않는 기사를 쓰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제가 최근에 많이 한 얘기는 ‘프레시안의 문제는 설득을 하지 않고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기사를 읽고 나서 ‘아, 이게 나쁘구나’ 이런 느낌이 드는 게 중요하다. 처음부터 분노에 차서 쓰는 게 아니라.”

-프레시안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달라.
“창립하고 한 달 반이 됐는데 항상 고민하는 점이 있다. (독자를) 주인이라고 모셨는데 합당한 대우를 해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계속 고민해야겠지만,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분들은 프레시안에 대한 중간평가를 해주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괜찮은 언론을 키운다는 자부심을 드릴 것이다. 프레시안이 우리나라에서 꼭 필요한 언론이 될 수 있도록 격려와 질책을 바란다.”

대담=장우성 기자/정리=김희영 기자/사진=강진아 기자



해직기자에서 진보언론의 산파로

박인규 프레시안 협동조합 초대 이사장은 인터넷언론이 등장하던 초창기인 지난 2001년 9월 프레시안에 창간 멤버로 합류했다. 이근성 현 프레시안 고문 등과 함께 속보 위주에서 탈피해 분석과 논평 중심의 ‘깊이 있는’ 뉴스를 표방한 프레시안 창간을 주도했다. 그는 2001년 프레시안 편집국장으로 출발해 2003년 이후 대표이사직을 맡아왔다.

박 이사장은 서울대 해양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에 동아일보, 그 뒤 매일경제에 입사했지만 순탄치 못했다. 이후 1983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과학부와 국제부, 워싱턴특파원, 매거진X부장, 미디어팀장 등을 지냈다. 1989년 12월 한화 그룹이 경향신문을 인수할 당시 경향신문 초대 노조집행부로서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다가 해직된 5명의 노조 간부 중 한명이었다. 이후 1990~1992년 기자협회보 편집국장을 거쳐 경향신문에 복직됐다.

그는 해양학 전공에 국제 분야 전문, 이북이 연고지인 점 등 리영희 선생과 겹치는 점이 많다. 하지만 “리 선생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강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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