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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명 매일경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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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폴리페서’가 있다면 은행에는 ‘폴리뱅커’가 있다.
폴리페서는 정치라는 의미의 폴리틱스(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프로페서(professor)를 합친 말이니, 폴리뱅커는 폴리틱스와 은행원을 의미하는 뱅커(banker)의 합성어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요즘 금융권은 인사철이다. KD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회장 인선이 최근에 마무리됐고 KB금융지주와 NH금융지주 회장 인선이 진행 중이다. 인사철을 맞아 폴리뱅커가 판을 치고 있다.
5년전 이맘때, 기자는 정치부에서 청와대를 출입했었다. 당시에 은행장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청와대를 찾아와 인사하는 걸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들이 4대 금융지주회사 회장 자리를 속속 차지하고 ‘4대 천왕’으로 불리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실감했다.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능력이나 전문성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기자도 소속을 바꿔 정치부에서 금융부로 출입처를 옮겼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다시 금융권 인사가 한창이다. 이른바 4대 천왕은 모두 물러났거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제2의 4대 천왕을 꿈꾸는 금융인들이 여전히 청와대에 줄대기를 하고 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능력이나 전문성으로 되는 게 아니라 청와대에 인사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5년전 기억이 또렷할테니 말이다.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대개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뽑는다. 회사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사외이사와 외부 전문가 등이 적절히 섞여 회추위를 구성한다.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최대 책무는 주주가치 극대화다. 또 금융회사 특성상 고객 가치도 생각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목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고르는 것이 회추위의 역할이다.
그런데 회추위에 ‘배 놔라, 감 놔라’하는 세력들이 있다. 청와대의 입김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정부의 관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노조가 ‘이 사람은 안된다, 저 사람은 안된다’며 노골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이른바 권치, 관치, 노치다.
이같은 여건 속에서 최근 금융지주회사 인사에서도 어김없이 대선에 기여한 사람, 청와대에 인사 잘한 사람, 정부와 가까운 사람, 노조와 가까운 사람…, 말 그대로 폴리뱅커가 유력 후보로 부상했다. 학연 지연은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 인맥까지 동원해 권력에 줄을 대면서 스스로 폴리뱅커를 자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실력이 안되니 관료는 안된다, 경쟁은행 출신은 안된다, 특정지역이라 안된다 등 쓸데없는 비방만 난무한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 금융회사 경영 경험, 금융기법에 대한 전문성 등 진짜 중요한 덕목들은 죄다 뒷전으로 밀렸다.
이렇게 선임된 폴리뱅커 회장들이 바라보는 것은 주주도 아니요, 고객도 아니다. 자신을 뽑아준 권력을 쳐다보는 게 이치다. 그러다가 권력이 다하면 함께 지는 것이 폴리뱅커들의 숙명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보는 쪽은 결국 주주와 고객이다. 외국의 선진 금융인들에게 보이기에도 부끄럽다.
무작정 폴리뱅커들을 탓할 수도 없다. 폴리뱅커를 부추기는 한국의 금융 토양이 문제다. 정치하는 은행원에게 권한과 직책을 내어주면서 정치하지 말라고 한들 그 말이 들어먹힐 리 없다.
애당초 폴리뱅커들을 과감히 배제할 수 있는 인선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능력도 전문성도 없이 정치권에 줄대는 것만으로는 금융권에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회추위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 여건이 갖춰진 연후에는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경쟁은행 출신이면 어떻고, 관료 출신이면 어떻고, 하물며 외국인이면 어떻겠나. 인사가 만사다. 흔해 빠진 말이지만 곱씹을수록 깊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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