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乙)'을 찾아간 기자들…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경향 곽희양 기자 '동성애 시위' 체험·시사IN 송지혜 기자 백화점 취업기


   
 
  ▲ 경향신문 곽희양 기자의 ‘동성애 1인 시위’(왼쪽) 체험기와 시사IN 송지혜 기자의 ‘백화점 취업기.’ 이들은 “체험기는 현장의 생생함을 전하지만 그들 삶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경향신문ㆍ시사IN)  
 
‘라면 상무의 승무원 폭행 사건, 한 제과업체 회장의 지갑 폭행 사건, 남양유업과 배상면주가의 대리점 밀어내기….’

사회적으로 ‘갑을(甲乙) 관계’가 연일 화두다. 언론들은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갑의 횡포 사례 등을 추적하며 일제히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 가운데 기자들이 직접 ‘을(乙)’을 체험한 기사가 독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경향신문은 5월16일자 1면에 기자의 ‘동성애 1인 시위’ 체험기를 실었다.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동성애자 차별금지를 다룬 기획 기사다.

경향신문 곽희양 기자가 직접 5~7일 3일간 서울시내 대형교회 앞과 합정역 사거리, 마포구청 앞 등 3곳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곽 기자는 “지난해 1면에 레즈비언 커플에 대한 인터뷰를 썼는데 가족구성권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차별 의식을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곽 기자는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동성애자도 여러분과 똑같이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성애자인 곽 기자는 속으로 ‘나는 동성애자다’를 계속 외쳤다. 조금이나마 동성애자의 입장에 가깝게 다가가 차별을 느껴보려는 주문이었다. 곽 기자는 기사에서 “교인들은 서로 안부를 건네고 웃음을 주고받았지만 그 웃음소리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행복’으로 들렸다”며 “성소수자들이 평생 이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으리라 어렴풋이 추측했다”고 밝혔다.

25일자 시사IN에는 기자의 백화점 취업기사가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 송지혜 시사IN 기자는 빅3백화점 중 한곳에 취업해 일주일간 백화점 직원으로 살았다. ‘을의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기사 서문에는 “지난 4월22일 김 아무개씨가 본인이 일하던 롯데백화점 서울 청량리점에서 투신했다…김씨의 죽음은 잠재된 각계각층 ‘을’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발화점이었다”고 밝혔다.

송 기자는 “롯데백화점에 취재하러 갔는데 기자에 대한 경계심이 굉장히 많았다. 이를 돌파하려면 내부에 들어가 취재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며 “독자들에게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고 말했다. 취업에는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백화점 여성복 코너 입점업체 매장의 매니저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도 보지 않고 5분여 만에 입사를 결정했다.

송 기자는 “백화점이 고객에는 관대하지만 매장 직원에게는 굉장히 인색하다”고 말했다. 매출에는 민감하지만 직원용 시설을 찾기는 힘들고 할인행사에 야근비나 특근비도 없다. 백화점은 판매 직원에게 서비스 제공 장소이자 평가와 감시, 처벌이 반복되는 곳이라고 했다. ‘을’의 입장을 가장 느꼈던 순간을 묻자 “본사 직원이 시찰할 때 그들의 눈초리가 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회적 약자 입장을 체험한 르포는 다양하다. 4월22일자 한겨레에는 기자가 보름간 경기도 중소도시의 한 노인요양원에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무시되고 있는 노인들의 인권 문제를 보도했다. 지난 2월4일자 경향신문에는 설 명절을 앞두고 기자가 직접 택배기사들의 애환을 전한 택배현장 체험 르포가 실렸다.

체험기사는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자들은 일시적인 체험이 그 전부인 양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이성애자인 기자가 동성애자 시위를 하는 것에 성소수자 단체 4곳에 의견을 물은 결과 “몇 시간 동안의 시위로 실제 성소수자가 느끼는 차별을 경험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곽 기자도 “비장애인이 장애인인 척, 백인이 흑인인 척 한다고 될 수 없듯 짧은 시간을 체험했다고 그 사람의 입장을 다 알 수 없다”며 “기자의 체험은 일부를 조금 맛볼 뿐 이들의 삶을 겪어볼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점을 주지해야한다”고 말했다.

송 기자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비쳤다. 송 기자는 “일주일을 일하고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체험기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며 일하는 것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생생하게 읽었다는 독자도 있고, 백화점 안에 ‘을’만 있는 것이 아닌 ‘희노애락’이 있다는 말을 전한 독자도 있다”며 “어떻게 체험하느냐에 따라 시각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생활이 있기에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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