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대립 끝내는 통합의 역사를 위해"
'김지하와 그의 시대' 연재하는 동아일보 허문명 오피니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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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문명 동아일보 오피니언 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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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세상은 그가 몰랐던 역사로 가득했다. 학우들의 분신자살사건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핏빛으로 물든 5월 광주를 보며 역사에 절망했다. 단일 사건으로는 건국 이래 최대인 1288명이 구속된 ‘10·28 건대 항쟁’에도 연루돼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됐다. 대학생활과 사회부 기자 초년병 시절 그의 머릿속에는 이런 실존적 고민이 지배했다.
그런 그에게 1991년 김지하 시인의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라는 외침은 생소함을 넘어 “이해불가”의 대상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인가.”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고 “타는 목마름”을 외치며 민주화 투쟁을 벌인 그가 민주화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학생들에게 비정하게 꾸짖다니.
그런 생소함이 용기로 이해되는데는 다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잊혔던 그를 다시 소환한 건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고초를 겪은 시인 김지하가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화해를, 어떤 이는 변절을 말했다.
과연 김지하는 어떤 사람인가. 이런 물음으로 지난 1월 인터뷰가 진행됐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풍요와 민주주의가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의 결과라는 것을 너무 쉽게 잊은 것 같다. 그 시대를 더 알고 싶다’는 전화와 이메일이 왔다. 한 후배 기자는 “약간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정상이네요”라고도 했다. 그간 언론에 비친 모습은 논리적 비약과 심한 감정기복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나오는 반응들이었다.
“김지하 회고록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 국장단에서 전격적으로 던져진 제의에 허문명 팀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지난 1960~70년대를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통합적 역사인식’ 없이는 통일 한국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8일부터 매일 연재하기 시작한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는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역사를 전할 것인가. 우리 역사는 민주화와 산업화 세대로 갈려서 상대방을 저주해 왔다. 분열과 대립의 반쪽짜리 역사를 끝내는 통합적 역사관이 필요하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인권,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국민적 소망은 민주화와 산업화로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김지하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한국 현대사를 재구성한 것은 그가 그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4·19 혁명, 5·16 군사쿠테타, 죽산 조봉암의 죽음, 10·26 박정희의 죽음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김지하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되짚어 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1991년 동아일보에 시작했다가 중단하고 2000년 출간한 김지하 회고록을 토대로 그의 증언을 들었다. 인터뷰는 2월에 집중됐다. 100시간의 시간과 600페이지의 분량의 원고가 나왔다. 여기에 각종 자료와 관련자 인터뷰가 더해졌다. 김 시인의 거처인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에 살다시피 했고, 침까지 맞아가며 역사의 재구성에 집중했다.
‘김지하와 그의 시대’는 2030세대에 던지는 메시지의 의미도 있다. “해방 이후부터 현대사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합의되지 않은 사실관계 때문에 자꾸만 이념대결이 나와 시대가 붕 떠버렸다. 사회통합에 이바지해야 하는 저널리스트의 사명감으로 연재를 하고 있다.”
현재 60회로 예정된 시리즈는 15일 27회까지 나왔다. 오는 7월까지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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