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 창립35주년 특집] 언론자정 관행이 문제다
'잘못'인정한다면 스스로 고쳐야..
기자협회보는 1011호에 국민회의에서 다수 출입기자들과 정치부장 등에게 여름 휴가비 조로 30만 원에서 100만 원 가량을 지급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취재과정에서 질문을 받은 대부분의 기자들은 "잘 모르겠다" 혹은 "그런 일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보도가 나가자 한 기자는 "언론계 관행을 가지고 대단한 비리인 양 기사화한 것은 심하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고, 다른 기자는 "받을 때마다 꺼림직하지만 관행이다 보니 거절하기도 힘들었는데 문제점을 지적해 주니 후련하다"고 말했다.
별 생각 없이 받든 마지못해 받든, 말 그대로 촌지를 받든 아니면 엄청난 혜택을 누리든 관행이라는 이름은 언론인 비리를 온존하는 틀이다. 이것이 국민들의 언론 불신을 가져왔고 언론개혁의 또다른 단초를 제공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언론인들의 비리에는 이해할 만한 부분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언론인들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낮은 급료를 받았다. 65년 당시 도시생활 최저 생계비가 2만80원이었는데, 중앙 언론사 평균 초임은 7400원이었다. 이것은 박 정권이 언론에 개입하는 명분이 되기도 했지만, 사회적으로 언론계의 관행을 이해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언론인 급료가 뛰기 시작해 80년대 말에는 중앙 언론사의 경우에는 어느 직장 못지 않은 수준이 되었으며, 지방 언론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기자협회나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등 언론 단체들이 자정운동을 본격적으로 거론한 시점이 80년대 말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자정운동은 민주화라는 당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듯 했다. 89년 5월 최초로 한겨레신문에서 개별사 최초의 윤리강령을 만들었고 90년 1월과 7월 KBS와 MBC가 '방송강령'을 제정, 선포했다. 91년 3월에는 동아일보가 윤리강령을 제정했으며 9월에는 지방에서는 최초로 부산일보에서 윤리강령을 제정했고 10월에는 대전일보가 그 뒤를 이었다.
이후에도 몇몇 언론사에서 윤리강령이나 이와 유사한 규칙들을 만들어 기자들의 비리를 규제하고자 했다.
각사의 윤리강령에는 ▷촌지 수수 배격 ▷취재경비 자사 부담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미 57년에 신문윤리 실천요강을 제정한 바 있으나 강제할 수 있는 제재수단이 없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개별사 윤리강령 제정의 밑바탕이었다. 그러나 여전히추상적인내용으로 유용한 행위지침이 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일률적으로 적용시키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또 사주의 경영권이 강화되고 이에 따른 조직 논리에 윤리강령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윤리강령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언론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관행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추운 겨울'에 만들어진 관행은 '따뜻한 봄날'이 돌아와도 바뀌지 않았다. 명문화한 윤리강령도 취재 현장에서 몸에 익은 관행을 대체하지 못했고, 그 앞에서 무릎 꿇고 말았다.
91년 11월 보사부 촌지 사건이 터져 기자 촌지가 사회 문제화하는 등 이후에도 잇달아 언론인 비리가 터져 나왔으며, 그밖에도 일상화하다시피 한 출입처 별 촌지나 외유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
올 들어서는 공영방송사 사장이 재임시 재벌한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고, 경제부 기자가 취재 중 입수한 정보를 이용해 주식에 투자, 수억 원의 부당 이익을 얻기도 하는 등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형태의 비리들까지 등장해 언론계가 '비리 백화점'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사이비언론 비리도 여전하다.
문화관광부의 사이비언론 단속 결과에 따르면 97년 42건이던 언론인의 금품갈취 행위 사례가 98년에는 125건으로 늘어났고 광고 강요 행위는 9건에서 29건으로, 이권개입은 5건에서 15건으로 늘어났다. 구속자 수도 97년 49명에서 270명으로 늘었다.
이같은 상황은 또다시 윤리강령의 필요성을 절감하도록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가 98년 사내 개혁위원회 활동의 산물로 윤리강령을 만들었고 KBS SBS 중앙일보 등도 사내 윤리강령을 정비했다.
그러나 기자들이 관행의 이름으로 현실을 수용한다면 언론인 비리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일부 기자들은 여전히 관행을 즐기지만 관행이 거북스러운 기자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이제 불편한 옷을 갈아입을 때는 되었는데, 먼저 새 옷을 입는 선구자는 명확히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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