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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원 조선일보 외교안보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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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새모어 하버드대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지난 20년간 한반도 안보상황을 지켜본 미국의 대량살상무기(WMD)전문가다. 1차 북핵위기 당시인 1993~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가 맺어질 때 미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미국에서 영향력이 큰 외교협회(CFR)의 부회장을 거쳐서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발탁돼 백악관 WMD 정책조정관(차관급)으로 일했다. 지난 4년간 오바마 대통령이 WMD와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그를 보좌했었다.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한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새모어 전 조정관은 지난 2월 아산정책연구원이 서울에서 주최한 회의에 참석했다. 소탈한 성격의 그는 1시간 넘게 계속된 기자회견에서 한국기자들의 질문에 상세하게 답변했다. 특히 한국의 정치권에서 핵무장론이나 전술핵무기 도입론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명쾌하게 선을 그었다. “한국의 핵무장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한미 군사동맹에 핵우산이 포함돼 있으므로 한국은 가장 강력한 핵무기를 가진 국가와 동맹관계란 점을 확신해도 좋다”고 했다.
전술핵무기를 재도입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군사적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이 잠수함·미사일 등의 억지력을 갖고 있으므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그를 별도로 만나서 이에 대해서 다시 물어봤다. “유사시 미군의 핵잠수함에서 전술핵무기를 발사하면 되는데 왜 한국 일각의 반발을 무릅쓰고 다시 한반도에 들여와야 하느냐”는 답이 되돌아왔다. WMD정책에 대해 지근(至近)거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보좌해온 새모어 총장의 이날 발언은 미국의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북한의 도발위협에 맞서 핵무장을 하거나 전술핵무기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인사들은 새모어 총장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핵무장 주장을 통해서 중국,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전술핵 재배치는 북한이 두려워할 만한 옵션이기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뚜렷한 대응방안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나오는 이런 주장의 충정(衷情)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김정은 정권에 더 이상 끌려 다녀서는 안된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핵무장에 착수하는 움직임이 보이는 순간, 북한이 단골로 올라가던 유엔안보리에 한국이 가게 된다. 2000년 초 불과 0.1톤의 우라늄 농축 실험으로 한국이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 뻔한 사건의 교훈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한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중요한 근거인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을 깨지 않는 한, 한국의 핵무장은 불가능하다.
새모어 총장이 시사한 대로 미국이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다시 들여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사시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에서 전술핵무기를 실은 폭격기가 출격하는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한반도 인근에 배치된 미 군함이나 핵잠수함을 통해서 원하는 곳을 폭격할 수도 있다. 미국은 전술핵무기 재배치로 한국에서 반미(反美)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업적으로 ‘핵 없는 세상’을 남기기 위해 러시아와 핵무기 감축협상을 진행하고, 전술핵무기는 줄이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를 전진배치하는 것은 오바마의 정책과도 맞지 않는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최근 전문가 대담에서 “북한이 남북 관계의 3T, 기조(tone), 시점(timing), 속도(tempo)를 다 지배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3D, 억지력(deterrence), 외교(diplomacy), 대화(dialogue)의 조화로 맞서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현실성 없는 핵무장·전술핵무기 도입 문제로 내부 논란을 빚을 때가 아니라 어떻게 3D를 적절히 활용해서 북한에 대응하느냐에 주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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