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중앙 사보 '마이 워스트 데이' 연재 눈길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중앙일보사가 사보 ‘중앙’에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악몽’과 같은 경험들을 ‘마이 워스트 데이(My worst day)’란 꼭지로 매주 연재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편집을 맡은 전략기획실쪽이 “가슴 아픈 실패담을 읽으며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자”는 취지라고 밝히고 있으나 모두 9회까지 연재된 ‘마이 워스트 데이’들은 가히 ‘작품’ 수준이기 때문이다. 간략히 소개한다.

지난 13일자에 체육부 손장환 차장은 장거리 출장 때 “한동안 비행기를 타지않고 고속버스를 타고 다닌” 이유를 소개했다. 지난 95년 6월 어느날 프로축구 경기를 여유를 갖고 취재하기 위해 탄 울산행 비행기가 강한 바람 때문에 부산 김해공항에 비상 착륙, 우여곡절 끝에 축구장에 도착했지만 경기는 이미 후반전이 15분이나 지난 뒤였던 것. 이미 4골이나 나와 경기도 지켜보지 못한 채 부랴부랴 기사를 썼지만 그 와중에 또 2골이 터졌다. 손차장은 “경기도 못보고, 기사는 엉터리로 쓰고, 돈은 돈대로 쓰고, 가슴은 새까맣게 타고. 내가 뭐하러 출장을 왔나”했던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문화부 오병상 차장은 ‘구문 취재로 종일 뺑뺑이’란 제목으로 14년전 중앙일보가 석간시절 자신의 경찰기자 때 일을 회고했다. 87년 1월 어느날 새벽녘 한 병원 영안실에서 기사거리가 될 만한 어린이 변사 사건을 접하고 취재를 시작, 아침 내내 한겨울임에도 땀에 젖어가며 달동네를 뒤져 어렵사리 망자의 사진까지 구했으나 알고 보니 조간신문에 이미 보도된 사건이었다. 결국 기사는 사회면 단신 처리. 오 차장은 그 뒤로 당시 선배 경찰기자들을 믿지 않고 “타지를 철저히 챙겼으며 요즘도 다른 조간을 안보면 찜찜하다”고.

사진부 김형수 차장은 7월 16일자에 ‘아침의 대박이 오후엔 쪽박으로’란 제목으로 지난 86년 8월 서진 룸싸롱 살인사건 때 자수하는 범인 사진 때문에 하루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간 얘기를 썼다. 취재 당시 범인과 경찰, 기자들이 뒤엉킨 아수라장에서 어렵게 혼자만이 셔터를 눌러 필름 첫부분에 범인 얼굴을 담았다고 판단, 필름을 회사로 보냈으나 실제 신문에 ‘자수한 칼잽이’란 제목과 함께 실린 것은 범인이 아닌 모 조간신문의 경찰기자 얼굴사진이었다. 당시 사용한 수동카메라에 넣은 필름의 리드(카메라 톱니바퀴에 거는 부분)가 길어, 범인 얼굴은 이미 노출된 필름 리드의마지막 부위에 찍혀 인화가 안됐고, 회사에선 당연히 다음 장면에 현장 스케치로 찍은 취재기자들의 얼굴사진을 범인사진으로 지목, 출고한 것. 김차장은 결국 시말서를 썼고 하숙방 이불 속에서 밤늦도록 “그 망할 X의 리드 때문에…”를 뇌까려야 했다.

경제부 이효준 기자는 지난 89년 1월의 어느날, 당시 자신의 경찰기자 1진이었던 육두문자가 사용 어휘의 절반이던 KGB란 별명으로 불린 선배와의 두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이날 늦잠 때문에 첫 보고해야 할 시각에 경찰서에 가지 못한 이 기자는 집 근처 파출소에서 기자실로 전화를 걸어 그의 대학친구인 타사 경찰기자에게 KGB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자신과 연결된 전화의 수화기와 송화기를 엇갈리게 맞대달라고 부탁,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 KGB는 “전화감이 왜 이리 멀어”라고만 할 뿐 이런 사실을 알아채지는 못했던 것.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위기를 모면한 다음 담당 경찰서에 도착했으나, 화장실에서 그만 삐삐를 변기 속으로 빠뜨리고 그 위를 ‘몸 속의 물질(?)’이 덮친 ‘참사’가 벌어졌다. 당시 KGB는 지금 휴대전화기 두배 크기의 삐삐를 두고 “이건 ‘총’이다. 총 잃어버리면 총살이다”고 으름장을 놓던 터라 삐삐를 고장냈다고 보고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이 기자는 KGB로부터 “제발 전화 그만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10분이 멀다하고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자는 “화장실의 참사가 나만의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심증의 근거로 선배들이 모두 왼쪽 허리춤에 삐삐를 차고 있는 모습을 내세웠다. “삐삐를 왼쪽에 차면 혁대고리 때문에 절대 빠지지 않았다”는 것. 김동원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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