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사장단 합의문 다시 들춰보자

이 광기가 '민족화해 언론활동'인가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백두산 삼지연 혁명사적지를 방문했을 때 거대한 동상을 세울 돈이 있으면 굶주리는 인민들에게 빵 사 주는 데 써야 할 것이라고 거침없이 지적했다고 한다.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해외 범민련 3자회의에서는 연방제 통일 강령을 삭제하기로 했다고 한다. 통상적인 뉴스 가치판단 기준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소식은 크게 다뤄지고도 남음이 있다. 남쪽 실정법상 대표적인 친북이적단체로 손꼽히고 있는 두 단체가 북쪽 면전에서 쓴소리를 쏟아내는가 하면 북측이 한사코 고집하는 통일방안보다 남북이 합의한 6·15 공동선언을 더 중시하는 일대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들이 직접 쓰고 편집한 보도물에서는 이 두 사건을 부각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사실은 이 밖에도 더 있다. 남북 민간 단체가 각 부문별 협의를 갖고 여러 가지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교류방식이다. 여기에는 우리 기자협회와 북측 기자동맹 사이에 분단 이후 최초로 이뤄진 공식적인 접촉도 포함돼 있다. 이렇듯 남북 화해와 협력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사건들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대신 일부 방북단이 약속을 어기고 `2001 민족통일 대축전’을 구경했다거나 방명록에 소감 한 줄 적었다거나, 김일성 주석 입상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거나, 백두산에서 그 무슨 만세를 불렀다거나 하는 등등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 `돌출행동’에는 과도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이런 일들이 시쳇말로 `꺼리’가 안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의미있는 사건들은 외면하면서 지엽말단적인 해프닝에는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균형감각을 상실한 보도태도로 비판 받아 마땅하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독 북쪽과 관련만 되면 획일적인 사고를 요구하고 심지어는 사상검증을 시도하며 사법처리까지 요구하는 전체주의적·비이성적 행태를 당연시하고 이런 행태에 동조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난다. 사상검증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이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더욱이 광복 50주년을 맞은 지난 1995년 8월 우리는 `평화통일과 남북 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준칙’을 제정공표했다. 이 준칙은 남북 화해와 신뢰 조성에 기여하기보다는 불신과 대결의식을 조장함으로써 반통일적 언론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는 통절한 자기 반성과 함께 `통일 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한 구체적인 보도 제작 방법을 담고 있다. 이어 지난해 8월에는 남북 언론사 사장들이 만나 `남북 언론기관들의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양측 언론기관들이 민족의 단합을 이룩하고 통일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언론활동을 적극 벌여나가며 민족 내부의 대결을 피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저해하는 비방중상을 중지하기로 약속한 것이 바로 1년 전 일이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이번 기자협회와 기자동맹 간 회담에서는 남북 공동의 보도 제작 준칙을 제정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평양에서 남북 기자들이 모처럼만에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논의를 하고 있는 때에 오히려 대결을 조장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들로 도배질하는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이제라도 우리 스스로 제정했던 보도 제작준칙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자. 사장단 합의문도 한번쯤 더 들춰보자.

나는 `바담 풍’하면서 남보고는 `바람 풍’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일용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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