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푸친 러시아 대통령이 합의 서명한 ‘모스코바’ 선언 가운데 국내 언론이 온통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관심을 집중했던 지난 4일 저녁 푸친 대통령이 마련한 환영연회를 다룬 북한 언론은 눈길을 끌만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의 주요 언론들이 이날 푸친 대통령이 연회에서 “러시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하고도, 대한민국하고도 다양하고 실속 있는 협력을 할 준비가 돼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한 것을 그대로 보도한 것.
남쪽을 부를 때 흔히 ‘남조선’이란 호칭을 사용해 온 북한 언론이 이날 푸친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경우였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이란 정식 국호를 사용한 것과 관련해 북한 전문기자들은 “매우 이례적”이란 반응을 보였다.
실제 북한 언론은 올해 들어 북-미 관계가 냉각되자 지난해 채택된 6·15공동선언의 원문을 인용할 때도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빼놓는 사례가 많았고 특히 미국을 비판하는 언론보도에선 여전히 ‘남조선’이란 호칭을 사용해 왔다. 당초 북한은 6·15공동선언 채택과 관련해 최근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이란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북한이 이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다시 ‘대한민국’이란 호칭을 사용한 데 대해 일부에선 “남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가겠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적 의미부여 외에도 관심을 끄는 것은 6·15공동선언 같은 주요 문헌이나 푸친 대통령 같은 고위 인사의 발언 내용을 원문 그대로 보도하는 태도라는 게 북한 전문기자들의 얘기다.
한 북한 전문기자는 “일상적인 남한 관련 보도에선 남조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다가도 6·15공동선언이나 이번 푸친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대한민국’이란 호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을 보면 중요 문서나 유명 인사의 발언의 경우 원문 보도에 충실하겠다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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