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님·아버님 모두 대선배입니다"
한겨레 차기태 기자 조부·부친 이어 기자 3대째
“한겨레 공채기자 모집에 합격했다고 말씀 드렸더니 ‘네가 3대째다’라고 하시며 흐뭇해하시더군요.”
보기 드물게 직계 3대째 기자인 가문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현재 교육부를 출입하고 있는 한겨레 민권사회1부 차기태 기자(42). 차 기자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기자였다.
타계한 차 기자의 할아버지 향산 차상학 선생은 1906년부터 민족주의 성향인 만세보 창간 기자로 활동했다. 향산 선생은 이어 대한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대한신문이 친일지로 변질되자 1910년 창간된 천도교월보에서 편집인겸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천도교월보는 교계기관지이면서도 민족성향이 강해 집필자들의 투옥은 물론, 발행금지처분까지 받기도 했다. 향산 선생은 또 강원도 출신 기자 1호로 알려지기도 했다.
차 기자의 아버지 차수열 선생(86)은 50년대부터 강원일보에서 10여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사회, 정경, 편집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차 선생은 요즘 시력이 약해져 신문을 자세히 보지는 못하지만 아들 회사인 한겨레 애독자로 간혹 차 기자의 기명기사가 없는 날이면 “왜 네 기사가 없냐”며 묻곤 한다. 또 “가끔은 ‘내가 쓴 칼럼에 대해 춘천시 관계자들이 놀라기도 했다’며 과거 현역시절을 회고하신다”고 차 기자는 전했다.
요즘 신문과 관련해선 발행 면수가 많은 것을 두고는 “신문이 아니라 잡지같다”거나 “문장이 너무 딱딱해졌다”고 나름의 평가를 전하면서 현역인 차 기자의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한겨레의 급여수준이 높지 않음을 알고는 생활상 어려움이 없는지를 안타까워 하신다고 차 기자는 말했다.
이런 ‘하늘같은’ 고참기자인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때마나 자신의 기자생활의 든든한 후원자임을 새삼 느끼곤 한다는 차 기자는 “할아버님도 지병 때문에 기자생활을 오래 하진 못하셨고, 아버님도 사정상 기자생활을 10여년 정도밖에 못하셨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현역기자로 현장을 지키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남인 원진(11)군도 이런 집안 내력을 알고는 얼마 전부터 “나도 기자가 되고 싶다”고 자주 말해 장차 4대째 기자 집안이 될 지 모른다면서 차 기자는 입가에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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