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은 하나입니다"

[시선집중 이 사람] KNN 진재운 기자, 환경다큐 제작 '열정'



   
 
  ▲ KNN 진재운 기자  
 
‘물은 생명입니다’로 다큐 제작 인연
람사르 총회서 ‘위대한 비행’ 상영도


새가 둥지에서 알을 깨고 나온다. 새끼는 처음 눈을 떠 앞에 움직이는 것을 어미로 인식한다. 그러곤 곧장 어미를 따라다닌다. 이를 ‘각인’이라 부른다. 진재운 KNN 기자가 입사 2년차에 제작한 ‘물은 생명입니다’(1997) 다큐는 그에게 ‘각인’이었다.

10분짜리 미니 다큐멘터리였지만 우리 주변의 환경이 위협당하는 일들이 많다는 생각을,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언론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적조, 그 죽음의 물결’(2006), ‘초록빛으로 숨죽인 강’(2007) 등 환경 보도특집과 다큐제작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게 된다.

진 기자의 다큐 가운데 ‘위대한 비행’(2012)은 수작으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도요새가 뉴질랜드에서 한반도를 거쳐 알래스카까지 돌아오는 3만km를 비행하는 여정과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역방송으로는 드물게 8억원의 제작비, 사전준비기간만 2년, 촬영기간 1년이 걸려 방송됐다. 준비기간 1년은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에서 연수 기간으로 보내며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모았다.

“위대한 비행은 찾아감과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제작의 전 과정을 마음을 비우는 자세로 임하자고 했어요. 당연히 촬영 중에 힘든 일들은 끊임없이 생겨났습니다.”

알래스카 툰드라 지대에서 헬기 촬영을 할 때였다. 한반도의 수 배나 되는 끝없이 펼쳐진 툰드라를 촬영하는 도중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쳤다. 대낮인데 사방은 새까만 시계제로로 변했다. 노련한 줄로만 알았던 기장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까지 미쳤다. 마음은 차분해졌다. 유언을 속으로 되뇌던 순간, 거짓말처럼 시야가 조금씩 확보됐다. 헬기는 가까스로 착륙했다.

이런 난관들이 계속될수록 뒤에 찾아오는 환희는 더욱 컸다. ‘위대한 비행’에서 도요새 무리의 압도적 스케일은 탄복할 만하다. 특히 도요새 무리가 집단으로 카메라를 향해 날아오는 장면은 압권이다. 몸 숨길 곳 하나 없는 갯벌 한가운데서 8시간을 꼼짝없이 앉아있다 불과 1~2초 만에 초고속 카메라에 담아낸 것이었다.

진 기자는 “이 장면을 촬영 후에 보고 또 보며 감격했고 전문가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며 “이 맛에 13개월의 긴 과정을 즐겼다”고 회상했다.

긴 기다림의 노력은 큰 보답으로 그에게 왔다. 지난해 7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람사르총회 본회의장에서 ‘위대한 비행’이 상영되는 영광을 안았다. 람사르 협약이 생긴 이래 최초였다. 1시간의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시빌리에 스위스 연방습지위원장은 진 기자를 찾아와 “이렇게 자연과 교감하는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진 기자는 이 같은 반응에 힘입어 국내 전국 상영관에서 ‘위대한 비행’을 동시 개봉했다.

“저는 그 기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자연과 사람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임을 도요새를 통해 증명하려 했던 것입니다. 자연과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한 부분이고 전체입니다.”

생태철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그에게 우리나라의 4대강 사업은 재앙 그 자체였다. 다큐 ‘한반도 환경대재앙 샨샤댐’(2005)에서 지적한 샨샤댐의 위험은 4대강 사업과 판박이였다.

“4대강은 이 샨샤댐의 실패를 한반도 전 구간에 재연한 토목공사예요. 샨샤댐의 파괴력과 피해를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타산지석이 못돼 사실 자괴감이 일었습니다.”

진 기자는 “이른 아침 안개가 산허리를 휘감고 산을 넘어가고 있는 모습, 그 사이 거미줄에 이슬이 맺혀있는 모습, 도요새가 날아가는 모습 모두 기적”이라며 “환경을 주변부로 인식하고 사람의 욕심을 채울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하면 이런 기적을 볼 수 없다”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식을 강조했다. 원성윤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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