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비 지원, 반값등록금, 노령 연금 등 사회적으로 복지가 화두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언론인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복지 현실은 열악하고 미래는 불투명하기 이를 데 없다. 규모가 큰 몇몇 언론사를 제외하면 언론인 복지수준은 낯 뜨거울 정도다. 좋은 저널리즘을 위해 언론사 차원의 노력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기자협회보는 언론인공제회 설립을 앞두고 ‘언론인 복지 지금부터 시작하자’는 기획을 통해 국내 언론사 복지제도 실태를 분석하고 외국 유수 언론사 복지제도를 소개하고자 한다.동아일보 부장급 A모 기자는 딸이 서울시내 유명 사립대에 다니고 있다. 1년 등록금만 1,400만원. 고액 연봉의 직장인도 등록금 낼 때면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A기자는 걱정이 없다. 회사에서 자녀 학자금 전액을 지원하고 있어서다. A기자는 “아이 학비에 구애 안 받고 일할 수 있어 좋다”며 “1년에 1,500만원짜리 적금을 붓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A경제신문 B기자는 선배로 모셨던 C모 부장을 최근 만났다. C부장은 경제부장으로 일하다 일반기업체의 임원으로 옮긴 지 몇 년 됐다. B기자는 “부장이 떠날 때 ‘이 월급으로 아이들 교육도 못 시킨다’고 푸념하던 모습이 선하다”며 “그런 그가 빚 갚고 교육을 위해 아이들을 외국에 보냈다고 해 씁쓸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적절한 급여는 말할 것도 없고 자녀 학자금이나 의료비 지원, 생활자금 대출 등 복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언론사에 근무하는 언론인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다. 안정적으로 사원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사가 있는 반면 사실상 복지를 사원 개인에게 맡기는 등 언론사 간 양극화가 뚜렷하다.
동아·조선·방송 3사, 복지기금 운용…조선 550억동아·조선일보, KBS·MBC·SBS 등 5개사는 사내복지기금을 조성해 사원 복지를 비교적 충분하게 제공하고 있다. 복지기금은 회사가 이익금의 일부(당해연도 세전이익의 2~5%)를 출연해 △주택 및 생활안정 자금 대출 △자녀 교육 학자금 △자기개발 △체육·문화활동 지원 등 복지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일종의 복지 전용 기금이다.
동아일보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주택 및 생활자금 대부, 자녀 중고 학자금, 체육·문화활동 등으로 활용한다. 주택자금(구입 5000만원, 전·월세 3000만원), 생활자금(1500만원)을 연리 5%로 빌려주고 있다. 기금 규모는 지난해 12월 현재 42억5000만원이다.
조선일보 사내복지기금은 방우영 명예회장이 출연한 기금을 모태로 하여 1993년 30억원 규모로 출발했다. 조선은 기금을 추가로 계속 출연해 20년 만에 기금 총액이 550억원을 넘어섰다. 조선은 이 기금으로 주택자금(5000만원)이나 생활자금(3000만원)을 연리 3%로 빌려주고 사원 자녀들의 대학 및 유아교육 학자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입원수술비, 대학원 학비 및 자기개발비, 종합건강검진, 단체보험, 자녀 입양, 콘도 등도 지원하고 있다.
KBS는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대출,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급, 콘도, 경조사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부터 대부 한도를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리고 생활안정자금의 이율을 연 6.1%에서 5.1%로 인하했다. 주택구입자금(1000만~5000만원)은 연리 4%다.
MBC는 사내복지기금을 개인연금, 학자금, 장애자녀 지원, 문화카드, 배우자 건강검진 등에 쓰고 있다. 기금 규모는 지난해 12월말 현재 340억여원. 주택 및 생활자금은 회사에서 연간 예산을 책정해 별도로 빌려주고 있다. 주택 4000만원(연 3~5%), 생활 1000만원(연 3~5%)이며, 월 평균 4~5명, 연간 60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다.
SBS는 사내복지기금 약 55억원으로 주택구입자금(4000만원), 전세자금(2000만원), 생활자금(2000만원)을 연 4% 이율로 대출해주고 있다. 올해부터 3.5% 수준으로 금리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복지기금을 통한 복지서비스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금 출연이 있어야 가능하다. 매년 추가로 기금을 출연하지 않으면 이자 수익에 의존하는 복지기금 운용 여건상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원금 사용은 불가피하다. 그럴 경우 기존 복지지원을 줄여야 하고, 최악의 경우 원금이 고갈될 수도 있다.
KBS의 경우 2003년 510억원에 달하던 복지기금 원금이 2004년 5월부터 시작한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원 사업에 매년 50억원 안팎의 금액이 들어가면서 기금 원금이 조금씩 줄어 현재 420억원 가량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 노사는 복지기금 정상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
신협·사우회·노조에 의존하기도…회사 자금 투자해야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신문은 신용협동조합이나 공제회, 사우회를 운영하고 있다. 사원들이 매달 내는 출자금으로 자산을 조성해 생활자금을 융자하고 퇴직할 때 목돈으로 돌려주는 소규모 복지서비스다. 설립 초기 회사에서 일정 금액을 출연했지만 자산 대부분이 직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중앙일보 신협의 자산은 145억원 정도. 직원들이 직급에 따라 매달 2만원에서 8만원까지 내는 출자금에 사내 커피전문점 수익금 등이 재원이다. 중앙일보 본사와 자회사 직원 2000여명이 조합원이다. 대출(200만~2000만원)의 경우 금리가 5.9%로 다소 높지만 절차가 간편하고 중도상환수수료가 없어 지난해말 현재 500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매일경제는 1980년대 초반 창업주의 출연금과 직원들의 적립금(급여의 1%)으로 매경공제회를 조성했다. 공제회 기금 50억여원은 직원 대출로 쓰고 있다. 매경은 2년간 분할상환 조건으로 직원들에게 500만원(연리 6%)까지 대출하고 있다. 기금이 넉넉하지 않아 자녀 학자금 지원 등 복지후생은 회사가 별도 비용으로 부담한다.
서울신문 사원들은 사우회비로 매달 임금 총액의 0.5%, 한국경제는 1%를 적립금으로 낸다. 사우회비로 서울은 생활자금 1000만원(연리 5%), 한경은 3000만원(연리 4%)까지 대출한다. 서울신문의 경우 120명, 한경은 141명이 대출을 이용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언론인 복지증진을 위한 정책 방안 보고서’(주정민·양용희·박종률)에 따르면 언론인들은 회사에서 필요한 복지제도 1순위로 ‘주택자금 및 생활자금 대출’을 꼽았다. 그만큼 지원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몇몇 언론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지원 시스템이 없다. 사실상 개인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다.
회사 차원의 대출제도가 없는 언론사 기자들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인금고의 문을 두드린다. 생활자금 1000만원, 중도금 및 전세자금 2000만원, 주택자금 6000만원까지 연리 3%로 빌려주고 있지만 언론인금고에 가입한 88개 언론사만 혜택을 본다는 게 문제다. 언론재단 측은 “기금 액수가 한정돼 있어 대출금 회수가 원활한 조건을 갖춘 언론사 위주로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말 현재 3326명(296억원)이 대출을 받았다.
노조에서 생활자금을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 한겨레와 헤럴드경제 노조는 긴급생활자금을 300만원까지 빌려주는데 매달 7~8명이 대출을 신청한다. 헤경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자녀 등록금, 치료비, 경조(결혼·장례), 학원비 등 소액 급전이 필요할 때 이용하고 있다”며 “이자가 거의 없고, 짧은 기간 내 갚을 수 있어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헤럴드경제, 서울경제, 이데일리 등은 별도 재원이 아닌 회사 비용으로 자녀 학자금이나 의료비 등을 지원한다. 안정적인 재원이 아닌 까닭에 회사의 경영상황이 어려워지면 지원이 중단되는 사례가 더러 발생한다. 경향 노조는 2009년 금융위기로 3년간 중단했던 대학 학자금 지원을 지난해 임협을 통해 부활시켰다.
한 언론사 노조위원장은 “급여 인상도 중요하지만 복지가 거미줄처럼 짜여있으면 업무 만족도가 높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질 것”이라며 “회사 자금을 복지기금이나 사우회비에 투자해 안정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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