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여론조사가 단순히 후보의 지지율을 중계하는 것을 넘어서 과학적인 분석기법을 통한 ‘지지 예측조사’로 탈바꿈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 ‘대선 여론조사와 방송사 출구조사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선거 전에 하는 판세분석 전화조사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은 ‘단순 지지율’ 보고에 머물고 있는 관행을 탈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여론조사에 ‘여론 변화라는 잠재변인에 대한 최선 추정치’를 과감하게 제시하는 분석기법을 도입할 경우 여론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고 주장했다.
주요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이 선거예측 이론모형을 개발하고 이에 근거해 실제 선거결과를 과감하게 예측하는 분석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 28일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열린 '대선 여론조사와 방송사 출구조사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 ||
이 교수는 “매일 발표되는 단순지지율 추이는 들쑥날쑥하고 조사결과 수치도 심하게 차이 나 유권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관련변수를 수집해 가공, 처리하면 일정한 패턴이 나타나고 주요 사건과 일정별로 여론의 추이를 추론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18대 대선 기간인 지난 9월 10일부터 12월 12일까지 공표된 여론조사만 해도 총 161개로 리얼미터가 46회, 한국갤럽 16회, 리서치뷰 15회 순으로 수많은 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 교수는 “후보 지지 예측치란 단순 여론조사 결과 이상의 것”이라며 “조사접촉, 응답행위, 지지결정, 투표행위 등에 대한 후보별 편향이 나타나는지를 검토한 후 보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례로 투표행위 의지만 봐도,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말한 응답자가 투표를 안 하는 경우가 많고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란 응답을 한 이들도 실제 투표장에 나타나는 경우가 상당하지만, 한국에서는 검토된 적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후보 지지도 변화를 관찰할 때 조사 자료에 근거해 이론적 가정을 도입해서 검증하지 않으면 향후 변화할 여론에 대해 다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번 18대 대선에서 방송사의 여론조사 결과 해석이 잘못됐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정일권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오차범위와 관련해 두 후보 간 지지도의 측정치 범위가 겹쳐있을 경우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의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며 “하지만 MBC는 보도에서 표본오차를 제시했지만 이를 고려하지 않고 순위를 밝히는데, ‘오차범위 내 약간 앞서는 것’ ‘오차 범위내의 격차로 역전’이라는 말은 여론조사 결과를 해석할 때 성립할 수 없는 말”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 교수는 “뉴스보도에서 여론조사 수치를 기사 제목으로 뽑아서 단순한 지표로 여겨지게 하는 등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 자료가 아닌 현실로 착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문제”라며 “다른 언론사나 기관의 여론조사를 인용할 때 신뢰성을 판단할 조사관련 정보가 누락되는 문제도 있다”고 비판했다.
공직선거법 108조 5항에 명시된 여론조사 공표와 보도 요건을 지키지 않는 점도 거론됐다. 지상파 3사의 보도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응답률 △질문문항 △피조사자 선정방법 △조사 일시 등의 기재가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할당표집의 기준과 유무선전화의 혼용비율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며 “여론 조사의 조사 일자도 중요하지만 오전, 오후에 했느냐에 따라 답변의 차이가 날 수 있기에 조사 ‘시간’의 공개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언론사간 공동 조사를 일반 선거 보도로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며 “선거 여론조사가 단순 지지율에서 벗어나 유권자와 후보자의 상호 대화가 가능하도록 주제를 다양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전자에게 흥밋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 정치 참여자들에게 구체적인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여론 조사의 근본 목적”이라고 밝혔다.
토론자들도 여론조사를 개선해야 한다는데 크게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민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여론조사가 왜 필요한지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화 여론조사 방법이 정교해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지지예측조사를 실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우선 지지율 조사와 예측 조사를 별도로 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여론 조사가 많은 이유는 시간소모용으로 언론사들의 수요가 많고, 조사기관이 난립하기 때문”이라며 “이번 대선에서 조사기관들 사이에 수치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이 문제였는데 여론조사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조사기관에 관한 엄밀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론조사의 ‘사후 검증제도’를 실시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경보 SBS 시사토론팀장은 “조사기관과 언론사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부정확한 여론조사와 속보 경쟁이 결합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사회 공공의 여론을 생산하는 여론조사의 경우, 특히 언론 보도가 될 때 조사가 어떤 방법과 절차로 이뤄졌는지 매우 구체적인 정보를 인터넷 등을 통해 사후에 공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를 학자 등이 검증해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다시 공개함으로써 신뢰 있는 조사기관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찬복 TNS 코리아 이사도 “조사 기관이 조사하는 과정과 자료를 깨끗이 외부에 공개하고 검증받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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