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보도 준칙 필요성 공감…실천이 관건

기협·인권위 '성범죄 보도 기준 마련 토론회'

현업 기자와 인권 전문가들이 모여 ‘성범죄 보도’에 대한 실천적 기준의 필요성에 기본적인 공감대를 이뤘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한국기자협회(회장 박종률)와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가 공동주최한 ‘성범죄 보도 세부기준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언론의 올바른 성범죄 보도를 위한 실천적 이행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과 현장의 괴리 토로
‘성범죄 보도와 언론의 책임’을 발제한 양현아 국가인권위원(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보도의 앎은 괴리되어 있다”며 “언론이 기준 없이 피해자와 피의자를 흥미 위주로 파헤치는 것과 정부가 재발방지를 위해 범죄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다르다”고 밝혔다. 양 위원은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지식”이라며 “언론은 행정부의 정보제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모니터해야한다”고 말했다.

조호연 경향신문 사회에디터는 각 언론에 보도된 △사진 오보와 초상권 논란 △피해자 인권 침해 △피해자·범인 가족에 대한 인권 침해 등 사례를 중심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 에디터는 “성범죄 보도의 인권침해, 선정성 논란은 늘 반복됐다”며 “언론이 아직까지 보도 대상자들의 기본적 권리를 최소한이라도 보장하는 것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유신재 한겨레 사회부 기자도 “성범죄 사건 보도를 최소화하는 것이 맞겠지만 취재경쟁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래도 가이드라인을 지키기가 힘든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성범죄 피해자와 피의자의 신상 공개 문제는 단연 화두였다. 심인보 KBS 사회부 기자는 “집단 심리 차원에서 언론에 피의자의 이름과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하나의 징벌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성범죄 보도가 자꾸 개인적·미시적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여론이 당장 실현가능하고 개선되는 부분만 주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숙 여성아동폭력피해중앙지원단장은 “피의자의 신상 공개는 객관화된 증거와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보도 과정에서 단순히 전문가의 입을 통해 나오는 ‘빅마우스’에만 의존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알 권리’와 ‘알릴 권리’ 구별해야
언론이 알 권리 문제뿐 아니라 인격권 보호에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도 나왔다. 김준현 민주사회변호사모임 언론위원장(변호사)은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보도한다고 하지만 취재과정에서 점차 피의자나 피해자를 단순 취재대상이나 뉴스거리로밖에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국민의 알 권리에 기대, 범죄사건에서 과도하게 자신들의 알릴 권리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한다”고 꼬집었다.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정책연구팀장(변호사)도 “공익적 가치나 알 권리라는 말이 언론에서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현실에서 당사자 보호 없이 피해자의 인격권까지 침해하는 근거로 쉽게 활용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모두 성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하지만 준칙 제정 및 실천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이었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인권위는 보도준칙만 만들지 말고 언론이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1년에 한번이라도 대대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며 “기자들의 시각 교정을 위해 구체적인 사례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언론보도 모니터 필요
안석모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교육국장은 “언론이 성폭력 경각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원인 분석이나 대책 마련을 위한 심층 보도에는 미흡했다”며 “보도 준칙이 제정되면 향후 어떻게 이행되는지 실태조사를 통해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언론의 인권 책임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언론들도 자체 자율 규정을 만들어서 보도 기준이 많이 확산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호연 에디터는 “성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의 제정과 실천은 사실 언론 자신을 위한 길이다”며 “개별 언론사뿐만 아니라 언론계 전체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정함으로써 자사 이기주의, 정파적 보도 등으로 실추된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인권보도준칙을 제정한데 이어 올해 제1회 인권보도상을 제정해 시상하는 등 인권보도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바람직한 성범죄 보도를 위해 기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내부 검토를 진행하기로 했다. 강진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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