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의 실격과 재벌의 반칙

[스페셜리스트│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경제학 박사


   
 
  ▲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선수들의 선전과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목표(금메달 10개-세계 10위)를 초과 달성했다. 하지만 배드민턴 승부조작 사건은 선수단은 물론 한국의 이미지에 큰 오점을 남겼다. 스포츠 정신의 요체는 정정당당이다. 스포츠에서 성과(금메달) 못지않게 과정(정정당당)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경영도 과거에는 성과 일변도였다. 하지만 성과와 과정(사회책임)을 함께 중시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사회책임의 국제표준인 ‘ISO 26000’은 인권과 노동, 환경, 소비자, 공정거래, 지역사회 공헌, 지배구조 등 7가지를 핵심분야로 제시하고 있다.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들은 올 들어 모두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방해하다가 ‘법 위에 군림하는 재벌’이라는 비난을 샀다. 삼성과 현대차는 불공정하도급 행위로 제재를 받았다.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과 상생경영을 다짐한 것이 무색하게 됐다. 삼성과 LG는 담합이 적발됐다. 담합은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안겨주는 불법행위로 시장경제의 공적으로 불린다. ‘시장경제의 반칙왕’으로 불러도 할말이 없을 지경이다. 법을 지키지 않고 힘없는 중소기업을 쥐어짜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줘도 이익만 늘면 상관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암세포처럼 기업문화에 퍼져 있다.

기업들의 탈법행위는 사회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국민들부터 성과 지상주의에 물들어 있다. 기업들이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경영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스포츠 정신이 실종되면 승자가 있어도 감동이 없다. 마찬가지로 기업들의 사회책임 정신이 실종되면 기업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박수는커녕 반 기업정서만 커진다.

지금까지는 재벌총수가 비자금 조성, 차명계좌 운용, 탈세 등 비리를 저질러도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여야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재벌총수라도 법 위반을 하면 봐줄 수 없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법안 통과 이전에 이미 반영되고 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횡령 혐의로 9년을 구형받았다. 김 회장은 과거 두차례나 실정법을 위반해 실형을 선고받고도 얼마 안돼 풀려났지만 이제는 안심하기 어렵게 됐다.

배드민턴 선수들은 어쩌면 금메달 지상주의의 희생양들이다. 선수들에게 져주기를 지시한 코치진과 금메달 지상주의를 방조한 우리 사회가 선수들에게 오히려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동안 각종 국제대회에서 고의 패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임직원들의 담합과 공정위 조사방해에 비난 여론이 거세자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임직원들을 나무라기보다 오히려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임직원들을 성과 지상주의에 몰아넣은 것은 최고경영진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를 이루고 기업이 존경을 받으려면 재벌총수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재벌총수들에게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불공정 하도급거래나 담합, 조사방해 행위를 뿌리뽑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반시장적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총수의 생각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이 바뀌지 않는 재벌총수를 봐주는 일부터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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