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조직논리로 앵커 임명…시청자 신뢰 떠난다

위기의 앵커, 현주소를 말하다



   
 
  ▲ MBC 기자회와 아나운서협회가 지난 4월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MBC에서 ‘MBC 프리랜서 앵커 채용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김재철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한편 프리랜서 앵커와 계약직 기자 채용의 철회를 요구했다.

(뉴시스)

 
 
“걸핏하면 경질…시청자 보다 조직 눈치 볼 수밖에”
“클로징코멘트는 보도 아닌 논평…심의대상 안돼”


2012년은 공정보도 회복을 위한 언론사 연쇄 파업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파업 가운데서도 잦은 앵커 교체로 인해 앵커의 영역은 점점 협소해져 가고 있다. 풍부한 경험의 기자 출신의 앵커가 정보의 바다 속에 ‘닻’을 내리며 던져주던 속 시원한 코멘트는 자취를 감추었다. 기자협회보는 ‘위기의 앵커’ 기획을 통해 앵커의 현주소에 대해 짚어본다.

세계 최초의 24시간 뉴스채널 ‘CNN’이 미국에서 개국했을 때 한 평론가는 “뉴스중독자를 위한 전일제 오락실”이라고 비난했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과연 뉴스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닻’을 내려 중심을 잡는다는 뜻의 앵커(Anchor)가 뉴스에서 구심점을 잡자 시청자들의 앵커에 대한 신뢰는 굳건해졌다.

앵커의 역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CBS의 월터 크롱카이터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미국이 수렁에 빠졌다”는 논평으로 반전여론을 조성했다. 백악관 등 정부고위관료들에게 핏대를 세우며 날선 질문을 던진 CNN의 종군기자 앤더슨 쿠퍼는 미국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앵커로 뽑히기도 했다.
한국의 앵커는 위기에 놓여 있다. 파업 도중에 자리를 비우고 나온 앵커들은 경질당하다시피 쫓겨나 현업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 아닌 이유로 앵커 교체”
MBC 박성호 앵커는 아침 뉴스 ‘뉴스투데이’를 진행했으나 보도본부장 불신임투표를 이끈 기자회장이라는 이유로 앵커자리에서 경질당했다. 파업에 동참했던 최일구 앵커는 주말 ‘뉴스데스크’ 자리에서 물러났고, 밤 ‘뉴스 24’를 진행했던 김수진 앵커 역시 물러났다. 이들의 빈자리에는 배현진, 양승은, 최대현 아나운서와 프리랜서 앵커가 자리했다.

‘뉴스데스크’ 앵커인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잦은 외유로 인해 부앵커 자리를 처음으로 만들고 앵커 경험이 전혀 없는 박용찬 기획취재부장을 선임했다. 권 본부장은 “보도본부장과 앵커를 겸임하다 보니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때 앵커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고정시킬 필요가 생겼다”고 설명했지만 앵커경험이 전무한 박 부장을 ‘뉴스데스크’의 부앵커로 임명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내부 지적이다.

KBS ‘뉴스12’를 진행한 김철민 앵커 역시 KBS 새노조 파업에 동참했다가 앵커에 결국 복귀하지 못했다. KBS 기자협회는 “인사보복”이라며 복귀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앞서 미디어법 통과 등에 반대해 블랙투쟁 등을 벌였던 YTN에서는 앵커들의 집단행동이 문제가 되자 20명의 앵커 가운데 절반 이상을 노조 가입이 되지 않는 프리랜서 앵커로 충원했다.

이 같은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MBC 박성호 전 앵커(기자회장)는 “MBC 앵커들의 잦은 경질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시청자에 대한 고려보다는 내부 조직논리에 의해서 이뤄진 점”이라며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받아 온 사람들이 아니라 회사가 판단하기에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을 앉힌다”고 지적했다. 박 전 앵커는 “앵커 자체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도 문제지만 현재의 앵커들이 과연 시청자들의 눈치를 볼지, 조직의 눈치를 볼지 답은 뻔하지 않겠느냐”며 “이런 환경에선 시청자와의 신뢰가 자리매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보도와 논평은 엄연히 다른 것”
‘클로징코멘트’로 주목을 받으며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던 신경민 전 앵커(민주통합당 의원)와 박혜진 앵커 역시 뉴스에서 물러난 뒤 TV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신 전 앵커는 권력에 대해 비판을 하다 결국 교체됐고, 미디어법 통과에 대해 당시 “방송법 내용은 물론 제대로 된 토론도 없는 절차에 찬성하기 어렵다”는 클로징코멘트를 한 박혜진 앵커는 공정성 위반을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보도가 아닌 앵커들의 논평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박경신 방통심의위원(고려대 교수)은 “방송심의규정상 보도와 논평이 구분되어 있기에 앵커의 논평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며 “표현에 대한 내용규제는 헌법적으로 금기시되는 규제방법인 정치적 견해차에 의한 차별이라고 볼 수 있고, 이는 심의위에서 정치적으로 남용된 사례가 많다”고 비판했다. 원성윤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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