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조선투위 사태,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이후 최대의 언론인 수난시대가 지루하게 지나가고 있다. 최근 해고와 징계의 양상은 특정인에 대한 ‘핀셋 징계’로 한발 더 나아갔다는 지적이다. 인사위원조차 딱 부러지게 해고 사유를 말해주지 못한 MBC 박성제 기자, 현 정권 이후 받은 정직 기간만 1년이 넘는 YTN 임장혁 기자가 그들 중 한 사람이다.“대량 징계, 김재철에 부메랑…전환점 머지 않았다”
‘묻지마’ 해고된 MBC 박성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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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박성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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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박성제 기자도 일종의 기우제를 지낸다. 김재철 사장이 퇴진할 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의 ‘수염’ 징크스는 빗나간 적이 없었다. 일례로 2010년 지방선거 방송을 성공적으로 치러 방송대상 특별상을 받은 선거방송기획단 부장시절에도 그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다.
박 기자는 지난 20일 해고됐다. ‘PD수첩’의 최승호 PD와 함께다. 두 사람 모두 전직 노조위원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 기자는 “이명박 정권이 광우병 촛불 사태와 미디어법 파업 등을 거치며 MBC를 ‘노영방송’이라고 비난하는 등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며 “MBC에서 노조를 와해시키겠다는 뜻이 담긴 해고”라고 지적했다.
박 기자는 “보도와 제작에서 구심점인 사람을 찍어놓고 이를 짜 맞추기 위해 징계사유를 들이대 결국 전직 노조위원장 두 명을 해고했다”고 설명했다.
해고사유는 명확하지 않다. ‘불법파업 참여’ 등이 이유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게 박 기자의 주장이다. 해고사유 가운데 하나인 권재홍 보도본부장 퇴근 저지 상황에서도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당시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징계를 하느냐. 몸싸움을 하고 있는 사진이라도 제시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인사위원회에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또 ‘불법파업 참여’로 지난 4월9일 정직을 당한 적이 있는 박 기자는 이번 인사위에서도 ‘불법파업 참여’가 해고사유로 꼽혔다. ‘일사부재리’의 원칙 위반이라고 박 기자가 지적하자 인사위원들은 한참을 답을 하지 못했다. 이런 해고였다. 김재철 사장의 측근 간부조차 박 기자에게 “나도 화가 난다. 왜 사장이 저렇게 고집을 피우는지 모르겠다. 곧 끝날 것”이라며 그를 다독일 정도였다.
박 기자는 과거 ‘카메라출동’ 등을 통해 ‘재벌 회장의 불법’을 고발하는 등 선 굵은 탐사보도를 선보였다. 특히 파업 직전에는 뉴스투데이 연출을 하며 방송 3사 꼴찌를 달렸던 아침 뉴스 ‘뉴스투데이’의 시청률을 1위까지 끌어올렸다는 공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 기자는 “저 역시 부끄러운 불공정 보도의 한 일원이었던 점을 반성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매일 보도국 편집회의의 멤버로 들어갈 때마다 좌절했죠. BBK, 내곡동 문제 등 타사에서 보도되는 뉴스들은 정권이 불편해할까봐 큐시트에서 뒤로 밀려나다 누락되기 일쑤였습니다. 지난 1월 보도국의 제작거부는 그런 기자들의 분노가 폭발한 겁니다.”
그는 지난 2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해고된 박성호 기자회장과 ‘뉴스투데이’에서 각각 연출과 앵커로 함께 일했다. 당시 두 기자는 ‘우리 뉴스가 왜 이러냐’며 서로 답답함을 토로하고 뉴스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사장은 틈만 나면 뉴스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요직에 임명해 놓은 간부들이 알아서 보도를 누락시키는 방식으로 불공정 보도가 횡행했습니다. 저도 의견을 몇 차례 개진했지만 바꾸기 쉽지 않았습니다.”
박 기자는 앞으로 김재철 사장의 임기가 머지않았다고 내다봤다. 그는 “대량징계를 감행하면서 김 사장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며 “징계가 오히려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턱밑까지 날아왔다. 조만간에 큰 국면 전환이 있지 않을까”라고 예측했다.
“KBS·연합뉴스는 노사 합의…왜 YTN만 못하나”
‘해고만 빼고 다 겪은’ YTN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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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TN 임장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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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혁 YTN 기자(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장)는 해직자 못지않게 가시밭길을 걷는 사람이다. 그가 2008년 10월 YTN 해직사태 이후 받은 징계는 최근의 정직 4개월을 포함해 세 차례의 정직, 대기발령 한차례에 이른다. 사측의 업무방해 고소로 벌금 500만원도 물었다. 2009년 3월에는 휴일 집에서 경찰에 긴급체포 당하기도 했다. 해직만 빼놓고 ‘빨간 줄’이 온몸을 할퀴고 갔다.
보통 사람이면 위축이 될 법도 한데 임장혁 기자는 여전히 항상 맨 앞줄에 서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해직된 선후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 대신이라도 서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힘들기도 하지만 이제 제 생존의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뿐만 아니라 해직자 복직을 바라는 YTN 식구들 모두의 마음입니다.”
YTN노조 조합원들은 임 기자에 대한 이번 중징계 역시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사실 공추위원장은 노조 전임자 중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세 번째다. 아무리 가중처벌이라고 해도 ‘표적 징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그에게 유독 징계가 집중된 사실도 또 다른 근거다. 그의 이력에 실마리가 있다. 임 기자는 2005~2008년 돌발영상을 맡으며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2008년 3월 청와대 외압으로 삭제 파문이 일었던 ‘마이너리티 리포트’ 편도 그의 작품이다.
“MBC PD수첩 최승호 PD같은 정권 비판의 상징이 해고됐습니다. YTN에서 노조 집행부가 아니었던 우장균 기자가 해직당한 것은 박선규 전 청와대 비서관의 행적을 비판한 칼럼을 쓴 것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정권에 불편한 언론인은 경영진에도 불편한 거죠.”
그 뒤로 4년. 뒤돌아볼 틈도 없던 지난 세월 동안 임 기자의 삶도 달라졌다. 항상 저항의 현장에 있었지만 기자로서 거듭나는 시간이었다. 기자 역시 노동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노동자의 문제를 보도할 때 그들의 사연 하나라도 더 귀담아듣게 됐어요. 어찌 보면 현 정권의 언론 장악이 제 삶과 정신에 많은 가르침을 준 셈이죠.”
하지만 언론사 연대파업이 일단락되는 지금도 YTN 파업은 아직 해결의 기미가 희미하다. 사측의 ‘불법 정치파업’ 규정에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YTN만 남겠다”는 소리마저 나오는 지경이다.
임 기자는 “배석규 사장의 기준으로 보면 임금의 ‘임’자도 꺼내지 않은 KBS, 연합뉴스 파업은 명백히 불법이지만 그래도 노사가 합의를 이뤄냈다”며 “해직자 복직, 사장 퇴진은 파업을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외쳤을 문제다. 지금 YTN 파업은 임단협 문제가 주된 목적인데도 사측은 이마저도 응할 생각이 없고 노조 탄압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인터뷰를 한 26일에도 임 기자는 파업 조합원들과 함께 국회에서 ‘플래시몹’을 벌였다. 말 한마디마다 진한 무더위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와 YTN 구성원들에게 ‘평화의 그날’은 멀었을까. 돌발영상의 엔딩크레딧에서 ‘임장혁’의 이름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날이 와도 후배들 때문에 돌발영상으로는 못 돌아갈 것 같아요.(웃음) 파업 기간 동안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저보다 방송 감각이 훨씬 뛰어난 후배들을 여럿 봤어요. 지난 4년 사이 방송 기술도 엄청나게 발전했어요. 돌아간다고 해도 그것부터 새로 배워야 됩니다. 다만 기술은 급격하게 진보했는데 우리 언론자유는 급격하게 퇴보한 게 가슴 아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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