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50년 국립무용단장의 공석을 바라보며

[스페셜리스트│문화] 김소영 MBC 기자·문화부


   
 
  ▲ 김소영 MBC 기자  
 
지난달 국립극장에서 국립무용단 창단 50년을 기념하는 ‘우리춤모음’ 공연이 열렸다. 역대 단장들이 안무한 주요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모아놓은 공연이었다. 한 단체의 역사가 반세기를 맞았다면 보통 경사가 아닐 수 없지만 이날 공연을 총괄한 사람은 예술 감독 직무대행을 맡은 백형민 춘천민예총 춤협회장이었다. 지난해 12월로 임기가 끝난 배정혜 전 예술 감독의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립극장 심사위원단이 고른 두 명의 후보자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례적으로 부적격판단을 내려 선정이 늦어졌다. 난감해진 국립극장은 재공모에 들어가 이번 주 12명의 지원자 가운데 다시 최종 후보를 추리는 심사에 들어간다. 국립극장의 다른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이 3월초 일찌감치 김성녀 중앙대 국악교육대학원장과 원일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수장으로 맞은 것에 비해 석 달 가까이 늦어지고 있어 하반기 공연 준비에 차질이 우려된다.

한국 무용은 1930년대 이후 크게 두 가지 갈래로 정리된다. 하나는 한성준이 총 정리해 집대성한 ‘전통무용’의 갈래가 있고, 최승희와 조택원이 일본 무용수 이시히 바쿠에게서 전수받은 현대무용을 한성준에게서 배운 전통무용에 접목해 만든 ‘신무용’이란 갈래가 있다. 한성준의 춤은 손녀이자 수제자인 한영숙과 강선영, 김천흥으로 이어지고, 월북한 최승희의 춤은 김백봉, 조택원의 춤은 송범에게 전수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일본에서 발레를 배우고 돌아온 임성남까지 가세해 50년대 후반 한국무용은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 시기 만들어진 것이 국립무용단이다. 임성남과 송범이 초대 공동단장이었으나 춤의 뿌리가 달라서인지 10년 후 국립발레단이 갈라져 나왔다. 

송범은 62년부터 무려 30년간 국립무용단장을 지냈다. 송범의 지도에 따라 국립무용단은 안정된 체계를 갖추고 주요 대표작들을 만들어냈으며 현재 한국 무용을 이끌어가는 2세대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국수호, 조흥동, 정재만이라는 3인방은 송범이 캐낸 보석 같은 재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눈부신 업적에도 불구하고 장기 독식에 따른 부작용은 피할 수 없어 창작력 빈곤이라는 비판을 받더니 임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후임을 미리 정해야한다는 웃지 못 할 여론까지 등장했다.

송범 이후 국립무용단은 제자 조흥동과 국수호, 친한 지인인 무용가 최현이 번갈아 맡았는데 최현은 8개월 만에 단원의 투서를 받아 사표를 내고 떠났고, 국수호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해임됐다. 시끄러운 국립무용단은 그 누구의 제자로 딱히 분류되지 않는 배정혜, 최승희, 조택원과 더불어 신무용의 대가인 황무봉의 제자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인 김현자가 맡으면서 안정을 되찾아갔다. 이 두 여성 단장은 무용단의 레퍼토리를 대대적으로 현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0년 동안 국립무용단을 이끈 배정혜 단장도 임기 말에는 일부 단원들과 불화를 겪었고, 무용계 전체와 미묘한 경쟁관계에 놓여 있던 한예종 출신의 첫 단장 김현자 교수는 전위적인 무용관을 고수해 전통 무용을 중시하는 당시의 지배적인 분위기 아래에서 맘고생을 해야 했다.

많지도 않은 인력에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 있는 관계가 항상 어려움으로 지적되지만 그래도 국립 무용단이 개성이 제각각 다른 다섯 명의 리더를 거치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온 것을 보면 우리 무용엔 강한 저력이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명색이 한 국가의 무용단을 대표하는 수장인데 더디 뽑는 만큼 이번에는 참신하고 합리적인 인물이 발탁돼 한국 무용계가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도록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으면 좋겠다. 김소영 MBC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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