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지 않은 길, 희망의 미래 걷는다"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앵커 이창훈씨 KBS 뉴스로 첫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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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 앵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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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장애인 앵커 이창훈씨가 지난 7일 KBS 뉴스를 통해 시청자들을 처음 만났다. 지난 7월 KBS의 제1호 장애인 앵커로 선발된 이씨는 정오에 방송되는 KBS ‘뉴스12’에서 ‘이창훈의 생활뉴스’라는 5분짜리 코너 진행을 맡으며 앵커 데뷔전을 치렀다. 프롬프터를 눈으로 읽는 대신 점자정보단말기를 손으로 짚어가며 뉴스를 전달하는 그의 모습은 분명 낯설었다. 하지만 큰 실수 없이 매끄럽게 뉴스를 진행하는 그에게 시청자들은 격려와 응원을 보냈고, KBS 보도국에서도 “기대 이상”이라며 합격점을 줬다.
그러나 정작 이씨 자신은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첫 방송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너무 못했다. 나한테 실망했다”며 스스로에게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하루에 두세 번 이상 꼭 버벅거려요. 뉴스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책 읽는다는 느낌이에요. 여유가 없다 보니 너무 급하고 말이 빠르더라고요.”
하지만 그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무엇보다 방송에 적응력이 생기고 자신감이 붙은 게 가장 큰 소득인 것 같다”며 이내 밝게 웃는다.
이씨는 지난 7월 무려 52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내 방송 최초의 장애인 앵커로 선발됐다. 시각장애 1급인 그는 생후 7개월 되던 때 뇌수막염을 앓은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TV를 보지 못한 그가 TV 뉴스 앵커가 됐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KBS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에도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종 면접에 방송 경험이 풍부한 응시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KBS는 오히려 그의 참신함을 높이 샀다. 장애인 앵커 선발 전형을 총괄한 KBS 보도국의 임흥순 부장은 “이씨의 참신함과 좋은 목소리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2007년 대학 4학년 때부터 한국시각장애인인터넷방송(KBIC)을 진행하며 사람들과 목소리를 공유하는 즐거움을 배웠다. 그런 그가 이제는 더 많은 시청자들과 뉴스를 통해 교감하고 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분이지만 그 5분을 위해 그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매일 시간대별로 방송 3사의 뉴스를 점검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 뉴스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청취하며 현안을 공부하곤 한다. “제가 정치, 경제에 좀 약한 편이거든요. 공부하면서 놓친 부분들을 많이 알게 돼요. 3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지만 여전히 어렵고 고민도 많이 되는데요,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는 혼자다. 동기도 없고 선배도, 후배도 없다. 물론 보도국에 많은 선배들이 있지만 최초의 장애인 앵커로서 혼자 만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더 크다. 스포츠와 음악을 좋아하는, 스물일곱 살의 평범한 청년에게 ‘최초’라는 단어의 무게는 그만큼 무겁다. “제가 어느 정도 해줘야 그 다음도 있는 거거든요. KBS에선 내년에도 (장애인 앵커를) 뽑겠다고 했지만 제가 실망을 주면 안 되겠죠. 열심히 해서 기회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의 명함에는 ‘KBS 보도본부 프리랜서 뉴스앵커’라고 적혀 있다. 정기 공채도 아니고 정규직도 아니다. 그의 계약 기간은 일단 내년 가을 개편 때까지다. 섭섭하고 아쉬울 법도 한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단다. “‘에이, 프리랜서잖아’ 하는 마음이었다면 아예 응시하지 않았을 거예요. 최초란 의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도전의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급여 같은 것은 다음 문제죠. 제가 열심히 잘 하면 또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는 매일,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5분 분량이지만 발전하는 뉴스 앵커가 되자”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래야 그 다음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통해 점자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장애인이 뉴스 앵커도 하는데 다른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퍼져나가는 것. 그래서 함께 사는 사회를 구현하는데 있어 작은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이크 앞에 선 그의 작지만 큰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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