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고 두 차례…80년대 언론민주화 운동 산증인
故김태홍 전 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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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김태홍 전 기자협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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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숙환으로 별세한 고 김태홍 의원은 1980년 3월31일에 열린 전국대의원대회 선거에서 임기 1년의 한국기자협회 회장에 선출됐다. 기자협회장에 당선된 고인은 출근 첫날 기자협회 사무실 문에 ‘기관원 출입금지’라고 써붙였다. 당시 횡행했던 언론검열 철폐운동의 시작이었다.
기자협회는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검열에 맞서 5월20일 자정을 기해 제작 거부 등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를 하면서 기자협회 간부들에 대한 검거령이 떨어졌다. 그는 100일간의 도피생활 끝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고인은 2010년 9월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내가 몸이 아픈 것이 당시 일과 무관하지 않아. 장기간에 걸쳐 도피생활을 하면서 엄청난 공포가 지배했어. 그것이 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고인은 2009년 11월 루게릭병 확진 판정을 받고 자택과 병원 등에서 투병생활 중이었다.
1942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일보와 합동통신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1980년 해직기자로 한국기자협회 회장을 지낸 이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내며 언론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1986년에는 월간 말 발행인으로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가 구속돼 다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합류해 광고이사와 제작담당 이사로 활동했다.
1995년 광주광역시 북구청장을 시작으로 정계에 투신해 16대·17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을 지냈고, 17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제1회 가톨릭언론대상, 제3회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80년 5월의 민주언론’, ‘민중과 자유언론’, ‘작은 만족이 아름답다’ 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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