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권리'vs'인격권' 사회적 합의 필요

[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 공동기획]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인권보도가 만든다 <5> 인격권 보도



   
 
  ▲ 문승영씨의 인권포스터 ‘너, 나’가 상징하듯 너와 나는 한 획 차이에 불과하다. 인권은 그 작은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국가인권위 제공)  
 
기자에게 책임 지우는 현 시스템 문제
기협·인권위, 인권보도준칙 제정 추진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 vs 개인의 인격권.’ 언론인들이 매순간 맞닥뜨리는 고민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같은 조 제4항은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되고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 피해자는 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언론의 자유가 민주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우월적 지위(1991년 헌법재판소 결정)이지만 언론으로부터 개인의 인격권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규정은 사후적이다. 특히 언론에 의한 법익 침해는 회복 불가능성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지난 1997년 헌법재판소는 “그 성질상 일단 침해된 후에는 금전배상이나 명예회복에 필요한 처분 등의 구제수단만으로 그 피해의 완전한 회복이 어렵고 손해전보의 실현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시한 것.

사후구제라도 받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결국 언론의 몫, 언론인의 책임이 크다.

인격권은 헌법 제10조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으로 생명, 신체, 건강, 명예, 성명, 초상,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의 향유를 내용으로 하는 권리를 말한다. 대개 언론에 의한 인격권 침해는 프라이버시 침해, 초상·음성·성명권 침해, 명예훼손 등이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시정권고 사례와 법원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하 인용한 사례는 사건 관계인의 인격권 보호를 위해 비실명 또는 익명 표기, 법원 판례는 언론사도 익명 처리)

공개할 만한 사생활인가
프라이버시권은 헌법 제17조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 특히 알권리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 사생활에 관한 사항이라도 뉴스의 가치가 있으면 이를 보도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그 기준은 공공이익에 우선하는지, 공적인물인지, 공적사항인지 등이다.

이에 부합하지 않는 일반인의 사생활을 공개하려면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동의 없이 공개하려면 그만한 공익적 필요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탈북소년 ○○이 “올해는 외롭지 않아요”>(조선일보, 2010.5.6):2007년 할아버지와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한 12세 소년이 부모 없이도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내용을 다루면서 소년의 실명, 재학중인 학교명, 북한에서 겪었던 과거사 등을 자세히 다뤄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생사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고 소년의 보호자인 할아버지의 동의가 없었음. 언론중재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침해 인정하여 1천5백만원 손해배상금 결정.

나도 모르게 TV에 나왔다면
초상, 음성, 성명도 언론에서 보도하려면 원칙적으로 동의가 필요하다. 대개 자신도 모르게 길거리에서 찍힌 사진을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미니스커트가 유행이라며 길거리에서 한 여대생을 촬영한 사건, 벚꽃구경을 나온 직장인을 촬영한 사건, 무더운 여름날 음료수 컵을 들고 길을 걷는 젊은 여성 3인을 촬영한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사건은 모두 언론중재위에 제소된 사례다. 다음은 지난해 언론중재위가 처리한 조정사건이다.

<집은 많은데 갈곳이 없네>(국민일보, 2010.1.16):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담벼락에 있는 전단지를 보고 있었을 뿐인데, 사전 동의 없이 이를 촬영해서 마치 하숙집을 구하지 못해 근심하고 있는 여대생인 것처럼 보도. 1백만원 배상 합의 성립.
<소비패턴 바꾸는 5만원권>(동아일보, 2010.9.20):추석 연휴를 3일 앞두고 백화점에서 쇼핑중이었는데 사전 동의도 없이 촬영한 사진을 게재해 초상권이 침해되었음. 50만원 배상 합의 성립.


동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속임수를 쓰거나 익명처리와 음성변조 등 동의의 전제조건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또한 동의한 범위를 벗어난 형태의 사용도 마찬가지다.



   
 
   
 
<공포의 통과의례>(○○방송, 1998.1.13. 서울고법 판결):성악과 대학생 4명은 방송사에서 신세대들의 생기발랄하고, 재미있고, 단합된 모습의 신입생 환영회 모습을 취재하겠다고 해 수락했는데 실제 방송된 내용은 신입생 환영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조명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법원, 방송사에 도합 1천6백만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
<못된 아이 매인가? 치료인가?>(○○방송, 2009.5.19. 서울남부지법 판결):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두 아이의 어머니는 이를 사회문제화하고 아이들의 치료를 돕겠다는 방송사의 요청으로 취재에 동의하여 보도됐으나 8개월 후 2차례에 걸쳐 교양프로그램과 뉴스 프로그램에 일부 편집된 영상이 무단으로 방송됐다. 이에 대해 언론조정신청을 통해 5백만원의 손해배상과 함께 관련 자료를 완전 폐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반년 뒤 뉴스 프로그램에 10초 정도 아이의 모습이 담긴 자료화면이 또 방송되어 소송 끝에 손해배상금으로 도합 5백만원 지급 판결.


공인의 초상 사용은 비교적 용인되는 편이지만 전혀 관련 없는 보도에 내보내면 안된다. 한 시사주간지가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해 8월부터 10월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연이어 내보냈다.

특히 8월에 발행된 잡지 표지에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진과 나란히 게재하여 북한이 오래전부터 김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이에 대해 소송이 제기됐고 1심 법원은 명예훼손과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4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범죄자는 인권 없나
언론의 범죄보도에서 헌법에 보장된 무죄추정원칙을 위배한 경우가 있다. 지난 2003년 살인사건을 보도한 18개 언론사가 손해배상을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언론의 <빚독촉 친동생 살해범 체포> 기사 등은 경찰이 수사중인 사건을 단정적인 표현의 제목을 사용해 보도했다.

이후 살인범으로 기소된 형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 언론조정신청을 했고 건당 평균 3백만원의 손해배상을 받았다.

공인이 아닌 범죄자나 피의자의 초상과 신원을 공개한 경우도 인격권 침해다. 범죄피해자나 제보자, 고소·고발인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상 결사 항전>(포항MBC, 2010.3.5):해상 단속반이 암컷 대게잡이 어선을 적발했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선원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없이 방송하여 초상권 침해. 언론중재위 2백50만원 손해배상 조정 합의.
<2인조 대학생 강도·강간범 검거>(중부일보, 2010.3.19):공인이 아닌 형사사건 피의자의 성, 나이만을 공표하는데 그치지 않고 학교 명칭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시정권고.


자살보도에서도 공인이 아닌 경우 신원을 공개하거나 원인에 대한 추측성 보도도 주의가 필요하다.

<모자가 숨진 채 발견 생활고 비관 자살추정>(영남일보, 2010. 7.16):자살자의 성, 나이와 함께 주소지를 리 단위까지 적시하여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하여 언론중재위 시정권고.
<대학병원 교수 자살 왜?>(대전일보, 2010.3.5):개인적인 채무와 우울증 등이 자살원인이었으나 마치 의약품 리베이트와 관련하여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한 것처럼 보도하여 언론중재위로부터 정정보도와 함께 유족측에 1백만원의 손해배상금 지급 조정 성립.

 
기자의 외줄타기를 넘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2007년 ‘방송과 인권’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서 ‘사회사건 보도와 인권’이란 주제의 발제와 토론이 진행됐다.

당시 토론자로 나온 일선 현장기자는 “언론 보도는 태생적 속성인 감시와 비판 기능, 알권리 충족을 위해 거의 예외없이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공공성과 진실성(또는 상당성)이 위법성 조각사유지만 기자들은 사안마다 매 순간 외줄타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따라서 “기자들의 외줄타기를 기자들의 외로운 결단과 판단에 맡기지 말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기자협회와 인권위가 공동으로 추진중인 인권보도준칙 제정은 그 연장선이다.
앞으로 학계, 법조계, 그리고 시민사회와 머리를 맞대고 모든 언론이 준수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공익적인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끝>

<공동취재팀>
김성후 기자협회보 기자 [email protected]
박광우 국가인권위 홍보협력과 사무관 [email protected]
김언경 방송독립포럼 사무국장 [email protected]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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