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기자처럼 바지런히 뛴다는 말 듣고 싶어"
25년차 고참 기자들 종횡무진…후배들에 귀감
한겨레 김현대·조선 문갑식·서울 이종원 기자
최근 20년차 이상의 고참 기자들이 현장에서 종횡무진해 후배기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2일 활약이 눈에 띄는 3명의 선임기자를 만났다. ‘뒷방 기자’는 이제 옛말, 그들은 나이와 연차가 무색하게 뛰고 또 뛰고 있었다. 연차가 차면 으레 데스크나 경영진으로 자리를 옮기는 언론계의 해묵은 관행을 그들은 뒤엎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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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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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과 똑같이 일해야죠” 김현대 기자(한겨레·25년차)
한겨레 김현대 선임기자(25년차)는 지난해 3월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가 자청해서였다. 5년 간 전략기획실과 한겨레경제연구소에 있으면서도 늘 현장의 기자를 꿈꿨다. 농업기자를 택했는데 현장으로 내려오자마자 일복이 터졌다. 배춧값 폭등에 구제역, 최근엔 농협 전산망 장애까지…. 눈코 뜰 새 없다. 1단 기사까지 알뜰히 챙긴다. 후배들과 똑같이 일한다는 게 그의 지론. 한겨레 노조가 발행하는 ‘진보언론’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내 꿈은 그런 거야. ‘나이든 고참 기자가 젊은 기자처럼 바지런하게 일하더라. 그런 모습 보는 게 나쁘지 않네’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 그는 한 르포 기사로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다. 지난 2월11일 ‘처참한 방역 불감증’이라는 제목으로 1면 6단 통 사진기사와 5면 머릿기사를 내보낸 것. 나뒹구는 새끼돼지들의 폐사체, 들짐승들에게 뜯겨 선홍빛 척추뼈만 남은 돼지 주검 등 현장의 참혹함을 전했고 방역당국의 이 같은 허술함에 여론의 공분이 일었다. 이런 노련함과 진지함, 성실함으로 사내 특종상도 두 차례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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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갑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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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 시멘트 바닥에서 잤죠” 문갑식 기자(조선·24년차)
조선일보 문갑식 기자(24년차)가 데스크에서 선임기자로 발령 난 것은 지난 2월8일. 사령장에 묻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그날 오후 3시, 문 기자는 곧바로 구제역이 한창인 안동으로 향했다. 20년 가까이 대형사건을 전담한 이력 때문인지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 특별주문을 넣었다. 그리고 다음날 ‘문갑식 선임기자, 구제역 매몰지를 가다’라는 타이틀을 단 르포 기사가 송고됐다. 생생한 현장감과 노련한 필치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다음은 일본 후쿠시마였다. 3월12일 대지진으로 대형 원전사고가 우려되는 후쿠시마에 문 기자가 우리 언론 최초로 들어갔다. 특별취재팀도 진두지휘했다. 9일간 머물면서 4일을 냉기서린 시멘트 바닥에서 잤다. 그는 “그 여파로 아직도 몸이 굉장히 안 좋다”고 했다. 그런데도 기사량이 엄청나다. ‘문갑식의 세상읽기’, ‘문갑식 선임기자의 현장리포트’,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등 24년차의 고참은 후배들 보란 듯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한 기자는 “종횡무진이라면 아마도 그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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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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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곳 있다면 어디든” 이종원 기자(서울·25년차)
서울신문 이종원 선임기자(25년차)는 지난해 7월 사진부로 원대 복귀했다. 그 역시 자청한 것이다. 2009년 5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사진DB팀에서 일했다. 의미 있는 일이긴 했지만 20여년간 현장을 누비던 기자에게는 사실 곤혹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현장을 갈망했다”, “20년간 찍어온 사진을 사장시켜야 한다는 게 안타까웠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요즘 살맛이 난다. 매달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을 내보낸다. 깊이 있는 앵글에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 고참기자의 ‘다른 앵글’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언제든 발을 벗고 나선다. 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똑같은 일을 해도 ‘후배들보다는 나아야 되는데’라는 압박감도 받고 부장과 부원들이 모두 후배이다 보니 그들에게 짐이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한다. 그래서 매일 사진 서적을 펴놓고 공부도 한다. 그는 “일손이 달리면 대형사건 ‘뻗치기’도 할 수 있다는 각오”라며 “후배들의 미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고참기자 현장취재 지극히 정상”
이 밖에도 많은 언론사 고참기자들이 선임기자, 전문기자, 편집위원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40대 초반에 부장을 맡는 등 데스크 연조가 해마다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참기자들의 이런 종횡무진은 우리 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다. 이들의 성공이 후배들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 물론 이들의 연착륙을 위해선 언론사와 언론계 모두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한겨레 김현대 선임기자는 이와 관련해 “계급을 중시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는 물론 언론사에 만연하고 이 때문에 데스크 등 보직을 받지 못하면 낙오, 후진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기자가 사회에 기여하는 길은 오직 기사로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선 문갑식 선임기자는 “평균 수명이 80세에 육박하는데 기자들 대부분이 50대 초반에 조로해 언론을 떠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수명을 늘려주고 지면 등을 제공하는 등 고참기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이종원 선임기자는 “후배기자들이 현장에서 고참기자들이 뛰는 모습을 자신의 미래라는 생각으로 바라봐줬으면 한다”며 “고참기자들도 같은 생각으로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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