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보다 '사람'에 주목하자

[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 공동기획]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인권보도가 만든다 <1> 장애 인권 보도



   
 
   
 
의식하지 못한 고정관념으로 일부 잘못된 표현 나타나
장애 인권보도 세부 가이드라인 제정, 준수 노력 필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목록을 규정한 세계인권선언에 장애는 없다. 1948년 12월10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이 선언 제2조에서 열거된 차별 금지 항목에 장애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장애를 인권문제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최근 번역서로 출간된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그린비출판사)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북유럽 출신 인류학자인 베네디크테 잉스타와 수전 레아놀즈 화이트의 저서를 김도현씨(37·장애인권 활동가)가 번역한 이 책에서 장애는 근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자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억압’이라고 소개한다. 공장제 노동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일할 수 없다고 판단된 사람’을 구분하여 배제한 것이 장애개념의 시초라고 한다. 이어 신체의 일부나 전부가 불완전하다는 ‘손상’의 개념이 장애로 확장되고 차별과 배제가 구조화되었다는 것이다.

‘장애는 불편할 뿐 불행하지 않다’(헬렌 켈러)는 말처럼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조금 다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해 ‘장애=결격사유’, ‘장애인=열등하고 사회생활에 결함이 있는 존재’라고 차별적으로 인식하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있다. 일부 언론 보도가 이를 조장하거나 확대하기도 한다. 다음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의뢰해 만든 ‘장애인권 언론제작 가이드라인’ 보고서 내용과 취재팀이 최근 모니터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장애인의 반대말이 정상인?
글과 말은 사회적으로 축적된 가치 체계의 반영이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글과 말이 장애인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다. 정상인을 장애인의 반대말로 표기하는 보도 기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듣지 못하는 성심야구부 선수들의 집중력은(중략)정상인들에 비해… ”「청각장애 충주성심야구부 ‘꿈의 1승’ 도전」(뉴시스 2011.3.24)
“지난 2005년 한양대 재학시절에는 정상인 친구들과 함께 650km의 국토대장정을… ”「김동원씨 불굴의 재활 도전기」(문화일보 2010.9.1)


‘절름발이 행정’과 같이 장애를 빗대어 부정적인 내용을 묘사한 기사도 있다. 이는 장애는 비정상이라는 편견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중국이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절름발이 국가라는 관점을 버리라고 권한다”「中의 성장… 美는 막지 말고 즐겨라」(한국일보 2011.1.21)
“자라나는 세대를 역사의 ‘청맹과니(눈뜬장님)’로 만들려는가”「‘청맹과니’역사교육」(세계일보 2010.2.16)


장애인이 등장하는 속담구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아 은연중에 편견을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 문학작품 소개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는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장애인 단체들의 지적이다.

“휴대전화 업체·이통사, 출고가 ‘꿀먹은 벙어리’”(한겨레 2011.3.30)
“보령지역 축산농가, 벙어리 냉가슴, 한우가격 하락으로 근심‘(뉴시스 2011.2.22)




   
 
   
 
장애를 고치라?

의학계에서는 장애를 질병으로 보지 않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재활을 통해 불편함을 개선할 수는 있지만 완치나 극복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간혹 드라마에서 장애가 기적적으로 완치되거나 재활로 완전히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이는 장애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언론보도에서 장애를 질병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령 장애는 가지고 있는 것이지 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장애를 앓고 있는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장애인이라고 무시해”… 30대 여성 연쇄방화」(MBC 뉴스데스크 2011.4.10)
“조씨 남매는 물론 어머니도 지적장애와 신체장애를 앓고 있어… ”「같은 마을의 장애 남매를 상습 성추행한 60대」(조선일보 2011.3.24)


휠체어는 의지하는 걸까? 사용하는 걸까? 이는 장애인과 휠체어 중 누가 주체인지 생각하면 답을 알 수 있다. 휠체어는 장애인이 조정하고 사용하는 주체이지 휠체어가 장애인을 이끌고 가는 주체는 아니다. 따라서 장애인을 보장기구에 의지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한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자신도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난 뒤 휠체어에 의존하는 중증 장애인으로… ”「기자의 눈-대사 없는 몸짓 연기 2시간30분…장애인 극단의 감동」(동아일보 2011.3.23)

부정적 선입견 “불구하고”
장애인의 성공이나 선행은 언론이 자주 보도하는 미담기사다. 그러나 모든 비장애인이 그렇듯 모든 장애인이 성공하거나 선행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장애인의 경우 그의 노력이나 전문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장애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을 ‘어떤 특정한 기능의 결여로 인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접근한 결과다. 이때 등장하는 표현이 ‘장애에도 불구하고’, ‘불구의 몸으로’, ‘신체는 못쓰지만’, ‘제 한 몸 가누기조차 힘든’ 등이다.

“이 교수는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최영씨 얘기를 쓴 게 계기… ”「이상묵 서울대 교수, 입으로 켜고 끌 수 있는 IPTV개발」(국민일보 2011.4.11)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전신마비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장애 극복 ‘한국판 호킹’, 9년만에 감동의 졸업장」(SBS 8시뉴스 2011.2.28)


사건 기사나 인물 소개 기사에서도 반드시 장애인이라는 것을 밝혀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예컨대 ‘부산서 장애인 절도 현행범, 수갑 찬 채 도주’(연합, 2011.4.11) 기사의 경우, 절도 현행범이 도주할 가능성이 장애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이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장애가 해당 사건이나 사고와 직간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확인되기 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또한 반드시 장애인임을 밝혀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비장애인과 똑같은 형식, 예컨대 이름, 직업, 직장명, 직책, 나이, 주거지 등 필요한 정보만 소개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앵글의 초점은 어디에

사진이나 TV뉴스의 영상에서도 ‘장애’를 과도하게 부각시킨 경우가 있다. 지난해 2월 양익준씨 신임 검사 임관식 보도가 대표적이다. ‘하반신 마미 극복한 양익준 검사’(연합 2010.2.8)와 ‘하반신 마비 이긴 검사’(뉴시스 2010.2.12) 기사에 실린 사진은 휠체어가 지나치게 부각되었다. 새로 임관된 검사로서의 기쁨과 그의 꿈, 포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그의 얼굴과 눈빛을 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장애인보장구나 장애상태는 장애인이 처한 현실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장애인의 정신적 가치와 그의 능력 그리고 휠체어가 아닌 그의 얼굴과 제스처에 앵글의 초점을 맞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적의 외다리 비보이’, ‘외팔댄서’, ‘엄지공주’(저신장장애인) 등은 장애인을 소개하는 방송프로그램에서 제목이나 별명으로 사용했던 표현이다. 애초 이 같은 표현은 장애 극복의 미담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역시 당사자의 능력이나 내면의 욕구와 사고 등은 무시되고 장애만 부각시켜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의 틀 바꿔야
언론인들이 의도적으로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차별하려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다만 무엇이 장애인을 위한 표현인지 분명하지 않거나 기자도 의식하지 못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일부 잘못된 표현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장애 인권 보도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준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를 ‘다름’이나 ‘개성’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장애인도 장애인이기 이전에 인권을 가진 인간 그 자체라는 인식이 그 출발점이 아닐까?

<공동취재팀>
김성후 기자협회보 기자 [email protected]
박광우 국가인권위 홍보협력과 사무관 [email protected]
김언경 방송독립포럼 사무국장 [email protected]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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