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훈 사장 "방송사업 조기에 정착시킬 것"

조선일보 창간 91주년 기념사서 밝혀


   
 
  ▲ 방상훈 사장  
 
조선일보가 5일로 창간 91주년을 맞는다. 조선은 4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김대중 고문 등 임직원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이 자리에서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방 사장은 “‘조선일보가 신문만큼 방송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그러나 방송 사업은 우리가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의 91년 역사를 되돌아볼 때 조선일보와 조선일보 사람들의 몸속에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의 DNA가 흐르고 있다”며 “새로운 도전을 헤쳐 나가 방송 사업을 조기에 정착시키도록 하자”고 했다.

방 사장은 “조선일보는 조선미디어그룹의 베이스캠프와 같다”며 “방송으로 인터넷으로 영역을 계속 확장해 가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조선일보라는 신문의 토대를 더 튼튼하게 하는 일이다. 차별화된 방송을 위해서 신문의 품질 향상에 더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창간 91주년 기념사 전문이다.

사원 여러분.
오늘 창간 91주년을 맞았습니다.
저는 지난 해 이 자리에서 창간 90주년을 ‘조선일보가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도약하는 원년’이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 말대로 우리는 작년 말 종편 방송사업 진출 허가를 받았습니다.
올해는 그 ‘선언’을 행동으로 옮기는 힘찬 행진이 시작되는 첫해입니다.
여러 곳에서 종편사업 허가를 받았으나, 우리는 이미 1월 말에 가장 먼저 발기인총회를 거쳐 방송법인 설립 절차를 마쳤습니다. 이달 중순쯤에는 정부의 최종 승인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원 여러분.
저는 요즘 조선일보사를 중흥시킨 계초 선생의 도전정신을 헤아려보고 있습니다. 계초는 1920년대 금광 개발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계초는 그러나 온 민족이 일제의 암울한 지배 아래서 허덕이던 그때, 경영인으로서 맡아야할 책무가 돈벌이만은 아니라고 믿고,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장래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 것인가 궁리 끝에 대규모 조림사업과 간척 사업을 벌였습니다.
계초는 또 민족의 언어인 한글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 서양(西洋)에서 동양(東洋)으로 밀려오던 새로운 문명을 온 민족에게 깨우쳐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가꿔가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언론에 투자했습니다.
계초의 새로운 투자는 사업성이 불투명해 무척 리스크가 높은 위험한 사업들이었습니다.

사원여러분,
저는 계초 선생이 언론사업에 뛰어들었던 초심(初心)을 되새기며 오늘 창간 91주년을 맞아, 많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민족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방송 사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우리 선배님들이 91년간 지켜왔던 언론 본연의 사명감을 더욱 더 굳게 다짐하며, 방송 사업을 조기에 정착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원여러분
‘조선일보가 신문만큼 방송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방송 사업은 우리가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가 결코 아닙니다.
조선일보의 91년 역사를 되돌아볼 때 조선일보와 조선일보 사람들의 몸속에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의 DNA가 흐르고 있습니다.
1924년, 창간 4돌의 신생 언론사였던 조선일보는 당시로선 ‘최첨단 뉴미디어’이던 라디오 방송에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그해 12월 17일 조선일보 사장 월남 이상재 선생은 서울 중구 수표동 사장실에 설치된 방송용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연설을 했습니다.
종로 우미관 극장에 모여 기다리던 수만 명의 시민들은 전파를 타고 날아온 월남 선생의 목소리를 듣고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했습니다.
라디오가 탄생한 미국에서 첫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이 전파를 탄지 불과 4년이 안 돼, 조선일보가 한반도에서 민간 최초로 라디오 시험방송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사원여러분
조선일보는 동영상과 뉴스영화 제작에서도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1926년 6월 10일, 순종황제 장례식 때 조선일보 기자들은 영화 촬영 카메라를 들고 장례식 현장에 달려갔습니다. 장례식 영상은 닷새 후 서울에서 상영되었으며,
이듬해 어린이날에는 시가행진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각 지국을 돌며 틀어주기도 했습니다.
몇 해 뒤엔 뉴스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서울 인사동 극장에서 시민들에게 무료로 서비스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주최한 ‘생활 개신(改新) 운동’ 선전 행렬과 상공인 대운동회, 유치원 야유회 등 대형 화면에 펼쳐지는 조선일보 영상 뉴스를 처음 본 관객들은 그저 신기해서 탄성과 환호를 쏟아냈습니다.

사원 여러분
인류가 발명해낸 의사전달 매체는 네 가지라고 합니다.
가장 먼저 신문으로 대표되는 활자 매체를 꼽을 수 있고, 라디오로 대표되는 소리 매체, TV로 대표되는 영상 매체, 그리고 최근에 발명된 컴퓨터를 이용한 인터넷 매체가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미 활자 매체와 인터넷 매체에서 국민의 가장 큰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소리와 영상을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원활하게 작동시켜야 할 출발점에 우리들은 서있습니다.
앞으로 조선일보가 활자와 인터넷 매체에서 확보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삼아 새로운 영상 매체까지 잘 융합시키면, 세대와 계층을 초월해 더 많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사원여러분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활자매체의 위기를 걱정하는 논쟁이 있었고 때로는 신문의 몰락이 거론됐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매체는 바로 신문입니다.
조선일보는 조선미디어그룹의 베이스캠프와 같은 존재입니다. 새로운 방송매체에 경도된 나머지, 그동안 조선일보라는 활자매체가 지켜온 신념과 가치를 독자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왔다는 자부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이 방송으로, 인터넷으로 영역을 계속 확장해 가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바로 조선일보라는 신문의 토대를 더 튼튼하게 하는 일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원여러분
조선일보는 9년 후 창간 100주년을 맞습니다.
우리는 논설과 기사의 품질을 더욱 높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종도 더 많아야 하고 지면도 더 새롭게 혁신해야 합니다. 신문의 의제 설정 기능도 더 강해져야 합니다.
‘차별화된 신문’ 없이는 기존 지상파 방송을 뛰어넘는 ‘차별화된 방송’이나 ‘차별화된 인터넷 속보’가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막말과 패륜 스토리에 의존하는 지상파와 전혀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우리의 방송 채널은 ‘기존 지상파의 아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빠르면서도 올바른 보도, 삶의 재미와 인생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우리나라 방송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갈 것입니다.
저는 차별화된 방송을 위해서 신문의 품질 향상에 더 투자할 것을 약속합니다.

사원 여러분.
우리에겐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의 통찰력’, ‘디지털 마인드로 무장한 창의성’이라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91년의 역사와 전통을 통해 선배들이 물려준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새로운 도전을 헤쳐 나가 방송사업을 조기에 정착시키도록 합시다.
신문-방송-뉴미디어를 삼각축으로 하는 조선미디어 그룹의 새로운 원년이 밝았습니다.
올 한해 우리 모두가 신문과 방송, 뉴미디어를 새로 창간한다는 각오로 다시 뜁시다.
오늘 장기 근속상을 받으시는 62명의 사원 여러분께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윤전기에서 갓 나온 신문을 온기가 가시기 전에 배달하기 위해 새벽부터 달리는 전국 1251개 지국의 지국장님들과 1만 5천여 지국 종사원, 그리고 조선일보를 위해 일하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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