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이 맺어준 사랑

중앙 김진경 기자, 미국 취재 중 스페인 해커 만나
화상통화로 사랑 키우다 1년5개월만에 결혼 '골인'


   
 
  중앙일보 김진경 기자(사진 오른쪽)와 호세씨는 13일 저녁 8시 신촌 연세대 동문회관 웨딩홀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트고 자라는 데에 자양분이 됐다.

김진경 중앙일보 기자(산업부)가 2009년 7월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고의 해킹·보안 콘퍼런스 ‘데프콘(Defcon)’ 취재 중에 만난 그 남자는 대회 본선에 오른 스페인팀의 리더였다. 인터뷰 이후 한두 차례 만남을 가졌던 두 사람은 그의 제안으로 저녁을 함께 먹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 화제가 책으로 옮겨졌고 ‘호밀밭의 파수꾼’ 얘기가 나왔다. “홀든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 세상을 싫어한 게 아니라 그저 운이 좀 없었을 뿐인데.” 주인공 홀든을 연민하는 그의 말에 김 기자의 머릿속에서는 종이 울렸다. 두 사람은 그 책에 대해 끝없이 얘기했다.

다음날 다시 그는 자신의 셔츠를 가리키며 “이 구절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거기엔 “I thought what I’d do was, I’d pretend I was one of those deaf-mutes(그곳에서는 귀머거리에 벙어리 행세를 하며 살 참이었다)”라고 쓰여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20번 넘게 탐독한 김 기자가 밑줄을 치며 읽었던 구절이었다.

콘퍼런스가 끝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러나 서로에게 빠져든 마음만은 그 이별에 동행하지 않았다. 김 기자가 ‘한 번 더 만나고 올 걸’이라고 후회할 때, 운명처럼 문자메시지가 왔다. “한국에 잘 돌아가라. 만나서 정말 좋았다. 사랑한다.” 그랜드캐니언이 내려다보이는 경비행기 안에서 그 남자의 얼굴이 둥실 떠올랐다.

각자 본국으로 돌아간 뒤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됐다. 이메일에서 채팅으로, 화상채팅에서 화상통화로 점점 발전해갔다. 주말엔 최장 14시간 화상통화도 했다. 인터넷 무료 화상전화 스카이프(skype)의 도움이 컸다. 그는 서울에 여러 차례 왔고, 김 기자 또한 파리 출장길에 그를 만났고 스페인도 한 번 다녀왔다.

소중하게 가꿔온 1년5개월의 사랑이 13일 결실을 맺게 됐다. 저녁 8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 동문회관 3층 웨딩홀에서 김 기자와 그의 예비신랑 ‘호세 마뉴엘 두아르트 로렌테(Jose Manuel Duart Lorente)의 결혼식이 열린다. 김 기자의 시댁인 스페인,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라스베이거스에서도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구글에서 리버스 엔지니어로 일하는 호세는 한국에서 살기 위해 재택근무를 신청해 둔 상태다. 김 기자는 “‘다문화 가정’을 이루게 됐다. 사는 것이 만만치 않겠지만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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