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차 베테랑 기자 현장을 고집하다

안성규 중앙선데이 외교안보에디터



   
 
  ▲ 안성규 중앙선데이 외교안보에디터  
 
두 달 추적 끝 김정남 단독 인터뷰 특종
“정보는 기자의 힘…숨은 기사 찾아내야”


이틀간의 추적도 허탕. 그는 초조해졌다. “알티라 호텔에 한국 여자와 있는 것을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한 지인의 한마디. ‘올인’이었다. 그러나 38층 호텔, 미로 같은 출입구, 종업원들의 삼엄한 눈초리…. 틀렸다 싶던 그 순간, 한 생각이 머리를 쳤다. ‘밤늦게 놀았을 것이다. 배고플 텐데 새벽부터 먹지는 않을 것이고, 그럼 브런치다.’ 10층 식당으로 향했다.

그의 눈과 마주쳤다. 긴가민가했다. 안경테를 살짝 들어올렸다. 뚜렷이 들어오는 독특한 인상착의. “아 잡았다!” 6월4일 오전 10시30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을 안성규 중앙일보 외교안보에디터는 그렇게 찾아냈다. 김정남과의 단독 인터뷰는 6월6일 ‘중앙선데이’ 1면(“천안함? 나는 모릅니다. 아버지 건강 좋습니다”)에 소개됐다. 이 인터뷰는 국내 언론은 물론 CNN, AP통신 등 해외 언론에 인용되는 등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4월쯤 ‘김정남 망명설’을 접하고 시작했으니, 두 달만의 추적 끝에 이뤄낸 쾌거였다. “여기저기 선을 대고 다리를 놓고 자비를 들여 홍콩도 다녀오고 그랬죠. 북한 최고 권력자 아들의 동선을 찾는 것은 어려웠어요. 바위를 뚫는 심정이랄까. 거의 좁혔다고 생각해 6월2일 마카오를 찾았어요. 만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마지막 베팅을 한 거죠.”

인터뷰는 식당 안에서 승강기로 걸어 나오는 10분 동안 진행됐다. 김정남은 피하지 않고 느긋하게 답했다. ‘망명설’ 등 민감한 질문은 노련하게 비껴갔다. 정작 벅벅댄 것은 안 에디터 자신. 조인스닷컴에 인터뷰 동영상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차분하게 더 오래 인터뷰할 여지가 있었는데 왜 그렇게 서둘렀느냐”고 했다.

“‘여기는 중국 땅이다. 튀거나 소란이 생기면 끝이다’는 생각이었어요. 얼굴 봤다고 기사 쓸 수 없잖아요. 초조했어요. 언제 튈지 모르니 핵심적인 질문만 속사포로 했죠. 얼마나 어렵게 찾아냈는데 말 한마디 못 나누면 끝이잖아요.” 손을 들어 인사하던 김정남이 승강기 속으로 사라지자 그는 동행했던 신인섭 사진기자와 괴성을 질렀다.

안 에디터는 중앙일보의 대표적인 외교안보통으로 꼽힌다. 1986년 입사한 그는 1990년 이후 줄곧 외교안보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등을 출입했고, 94년부터 3년간 모스크바 특파원도 지냈다. 기획취재팀에서 1년 남짓 일했고 기획실 기획팀장, 통일문화연구소 부장 등을 거쳐 중앙선데이 외교안보에디터를 하고 있다.

올해로 기자생활 25년차인 그는 현장을 강조한다. 대기자는 ‘데스크’가 아닌 ‘현장’에서 나온다는 신념이 있다. “데스크에 앉으면 일단 시야가 가려져요. 밑에서 올라오는 정보 이외에 아는 게 없죠. 기자라면 자기가 정보를 찾아야 해요. 그게 기자의 힘을 키워주죠. 우리나라도 수석 차장이나 부장 연조의 기자들이 기사를 많이 써야 해요.”

그는 소스를 개발하는 것이 필생의 과제라고 말했다. 연배가 비슷한 취재원들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 또한 새로운 인맥을 쌓아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나이든 기자들이 현장 취재를 기피하는 주된 이유다. 그렇다고 그는 피하지 않는다. 내년이면 54세가 되지만, 필요하면 취재원과 술 먹고 노래도 한다. 그는 친한 소스를 1백명 갖고 있는 것보다 절친한 소스 1명을 갖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후배 기자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창의적인 기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건기사야 금방 눈에 띄지만, 속에 숨어 있는 기사는 창의적이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거든요. 그리고 글 쓰는 연습을 많이 했으면 해요.”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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