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주류 언론 대신하다

폭로의 영역 인터넷에 내주고 비즈니스 함몰
어산지 "민주사회 강력한 미디어 필요로 해"


   
 
  ▲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의 지지자들이 11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어산지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휘슬블로어(Whistle Blower·내부고발자)들은 더 이상 기득권이 된 언론을 믿지 않는다. 지금의 언론은 권력에 도전하지도 않고, 믿을 만한 폭로의 매개체를 자처하지도 않는다.”

고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가 런던 경찰에 자진 출두하기 직전까지 은신해 있던 런던 프런트라인 클럽의 설립자인 보언 스미스는 세계일보와 서면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의 말은 미 국무부 외교전문(電文) 25만 건을 빼돌린 브래들리 매닝 일병이 세계 유력 언론이 아닌 위키리크스에 정보를 전달했는지에 대한 답을 준다. ‘뉴욕타임스’ ‘가디언’ ‘르몽드’ ‘슈피겔’ ‘엘파이스’ 등 세계 유수의 언론은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문서를 전달받아 2차적으로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데는 이들 언론의 책임 있는 보도가 큰 힘을 발휘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국가권력의 위선과 흑막에 대한 폭로가 신문 등 주류 미디어를 통해 이뤄져 왔다는 것은 여러 사례가 말해준다.

미 국방부가 1964년 베트남전 확전을 위해, 미 함정이 북베트남에 공격당한 것처럼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은 1971년 6월 뉴욕타임스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이 폭로는 전직 해군장교 대니얼 엘스버그가 미 국방부의 베트남전 1급 기밀보고서인 ‘펜타곤 페이퍼’를 뉴욕타임스에 넘겨주면서 가능했다.

1990년 10월 국군보안사령부가 당시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김영삼 민주자유당 최고위원, 김수환 추기경 등 1천3백명의 민간인에 대해 불법 사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윤석양 이병의 폭로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놨다. 윤 이병은 기자회견을 위해 보안사를 탈영한 직후 한겨레 기자를 먼저 만나 이 사실을 제보했다.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발달로 폭로의 역학관계는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폭력의 주역이었던 신문, 방송 등 주류 언론들은 위키리크스의 비밀외교문서 파문에서 보듯 그 영역을 웹사이트 등 뉴미디어에 내주고 있다. 어산지는 호주 일간지 기고문에서 “민주사회는 위키리크스처럼 정부의 거짓말을 감시하는 강력한 미디어를 필요로 한다. 위키리크스는 인터넷을 활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과학적 저널리즘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저널리즘보다는 비즈니스가 우선인 미디어의 현실이 이런 상황 변화에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는 “위키리크스가 저널리즘의 한계를 노출한 주류 언론의 역할을 대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 파문이 커지자 미국 정부는 줄리안 어산지를 집요하게 압박하고 있다. 서버와 도메인을 차단하고 돈줄까지 끊더니 성폭행 혐의로 어산지를 구속했다. 간첩죄를 적용해 기소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어디서 많이 보던 상황 전개다. 연보흠 MBC 노조 홍보국장은 “어산지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탄압은 자신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임기가 남은 공영방송 사장을 억지로 끌어내리고, 정부 정책을 비판한 언론을 눈엣가시로 여겨 언론인을 해고하고 감옥에 보내는 일이 횡행한 우리나라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고 말했다.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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