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속 기자는 왜 부정적일까?

영화 창작자들에 부정적 인식 여전…자정노력 우선돼야


   
 
  ▲ 류승완 감독의 신작 영화 ‘부당거래’의 한 장면.  
 
“제가 이런 방향으로 몰고 갈까요?(기자)” “좋지. 좋지. (시계를 건네며) 이건 좀 넣어둬.(검사)” “아, 뭘 이런 걸 다(기자).”

최근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의 한 장면이다. 기자는 검사에게 향응과 뇌물(한정판 명품시계)을 받고 검사 측에 유리한 기사를 써주는 ‘구악 기자’로 등장한다. 10월 개봉한 ‘심야의FM’에도 비윤리적인 방송기자가 나온다. 최근 영화에 등장한 기자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부도덕하거나 부정적이다.

이는 그리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한국영화에서 기자의 모습은 늘 약자를 괴롭히는 악인을 돕는 캐릭터이거나 우스꽝스러운 풍자의 대상일 뿐이었다. 올해 초 개봉한 김상진 감독의 ‘주유소습격사건2’에도 두 명의 구악기자가 등장했다. 한 명은 어디선가 향응을 제공받은 만취상태로 극의 주인공들과 엮이는 웃음코드였고, 다른 기자는 주인공 원펀치(지현우 역)와 악연이 있는 비리기자였다.

이보다 앞서 2009년 흥행작 ‘과속스캔들’엔 특종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비한 역할로, 2006년작 ‘최강로맨스’에는 수사팀과 공조한 잠입취재 현장에서 술에 취해 난장판을 벌이는 좌충우돌 캐릭터로 나왔다. 영화 전문기자들은 한국영화 속 기자들은 “하나같이 귀찮고 성가시며 수사를 방해하고 잘못된 여론을 조작하는 캐릭터이거나 실제 기자가 카메오로 등장, 사건의 주체자와 인터뷰하는 대상자 정도였다”고 말했다.

영화보단 덜하나 드라마 속에서도 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 전 SBS ‘대물’에는 청탁을 받아 스캔들을 만들고 정치인들의 ‘마타도어’에 이용되는 시사잡지 기자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언론의 ‘자업자득’ 측면이 있다고 해석한다. 뿌리깊은 촌지관행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최근 터진 옥새사건에도 촌지를 받고 기사를 써준 기자가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한국영화기자협회 김호일 회장은 “영화 창작자들은 기자사회를 아직까지 거대 권력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권력은 다른 권력과 야합하는 속성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며 “이 때문에 기자들이 부도덕하고 다수가 공분하는 캐릭터로 묘사되곤 한다”고 말했다.

씨네21 김혜리 기자는 “‘TBS사람들’이라는 영화가 기획단계에 있었으나 아직 본격적으로 방송사나 신문사 종사자를 다루거나 미디어의 실체를 고발한 영화는 없었다”며 “감독들이 특별히 언론인을 부정적으로 보기 보단, 사건을 독자적으로 힘 있게 이끌어나갈 주체자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기자들의 취재환경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한국 언론들은 속보 위주의 데일리뉴스를 생산하고 있어 비리를 파헤치는 대형 탐사보도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등 외국에 비해 언론민주화, 저널리즘의 역사가 짧다는 것도 요인으로 분석됐다.

외국에서는 기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다수 있으며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경우가 고루 다뤄진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퇴진을 불러온 워터게이트 특종의 전모를 다룬 영화 ‘대통령의 사람들(1976)’이 대표적이다. 마약 폭력조직과 맞서다가 결국 암살된 아일랜드 여기자의 실화를 다룬 ‘베로니카 게린(2003)’도 있다. ‘인사이더(1999)’는 담배기업의 비리를 추적하는 기자와 과학자의 투쟁을 담아냈다.

독일 적군파에 가담한 여 기자의 실화를 다룬 ‘바더마인호프(2008)’와 이라크 전의 배후에 기자가 악용되고 있었다는 내용의 ‘그린존(2010)’, 언론의 노골적인 대통령 만들기를 풍자한 ‘웩더독(1997)’은 기자들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예다. 특히 외국은 미디어의 속성을 꼬집는 거시적 시각의 영화도 다수 있다. 미디어의 권력화와 사생활 침해 문제를 다룬 ‘트루먼쇼(1998)’가 대표적이다. 이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페이스북의 탄생배경과 이면의 문제들을 다룬 영화 ‘소셜네트워크(2010)’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호일 회장은 “언론인들의 자정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고 이 같은 노력이 일반에 많이 알려져야 한다”며 “실미도, 살인의추억 등 이면에 숨겨진 사건들이 속속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우리 언론인들이 언론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내용도 가까운 미래에 영화로 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선미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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