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보도본부 '날개없는 추락'

수뇌부에 대한 불신 고조…"떠나고 싶다" 하소연
잦은 인사로 불안정…본부장 등 사퇴요구 글 올라


   
 
  ▲ MBC 한 기자는 최근 보도본부 게시판에 올린 실명 글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사들, 중요한 기사들이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일선 기자들을 이끄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보도제작국장이 소임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MBC 보도국 전경.(MBC 노조 제공)  
 
9월1일 새벽 2시쯤 서울 여의도 MBC 보도국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차장급 한 기자가 술기운을 빌려 보도국장실 집기를 부수고 사장실 출입문을 박차며 울분을 토한 것이다. 보도국 안팎에서 성실하고 능력 있는 기자로 알려진 이 기자는 취재에 매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붕괴된 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그는 “뜻이 어디에 있든 표출한 방식이 부끄럽다”며 재심을 청구하지 않았다.

그 사건은 현 보도본부 책임자들과 경영진에 대한 기자들의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공영성 약화를 우려하는 기자들의 반대에도 ‘후플러스’ 폐지와 주말 ‘뉴스데스크’ 시간대 이동이 확정되면서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한 기자는 “보도본부 간부들이 일선 기자들의 정서를 보듬지 못하고 경영진의 논리에 휘둘리면서 기자들과 수뇌부 사이에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골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면 뭐하나” 무기력 정서 퍼져
이 같은 상황은 MBC 뉴스의 질적인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MBC는 최근 타 방송사를 통해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현오 경찰청장 망언, 국새 비리 의혹,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혜 의혹 등 굵직한 특종보도를 접했다. MBC 한 기자는 “생활밀착형 아이템을 선호하는 보도국장은 논란의 소지가 있거나 껄끄러운 기사는 다루지 않거나 피해간다”며 “윗선의 분위기가 기자들에게 ‘하면 뭐하나’ 하는 자포자기 정서를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MBC는 4대강 사업, 국무총리실 불법민간인 사찰, 인사청문회 등 굵직한 현안이 터졌을 때 이를 취재하는 특별취재팀을 한 차례도 구성하지 않았다. “말로는 공격적인 아이템을 가져오라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취재할 수 있는 장은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차장급인 한 기자는 “언론의 본령은 권력과 자본에 대한 감시와 비판인데, MBC의 현주소는 그렇지 못하다”며 “뚝심 있게 밀어야 할 사안은 주저하고 외부에서 시비가 오면 휘둘린다”고 말했다.

MBC 한 기자는 최근 보도본부 게시판에 후플러스 폐지와 주말 뉴스데스크 이동에 책임을 지고 차경호 보도본부장과 이장석 보도국장, 송기원 보도제작국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실명 글을 올렸다. 그는 “정권이 바뀐 뒤에 MBC 뉴스는 내리막을 거듭해왔다”며 “시청률보다 오히려 그 내용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돔과 고모라’같은 보도국과 보도제작국에서 10명 아니, 5명의 선한 사람도 찾기 힘든 것 같다는 후배들의 넋두리를 접하면서 비겁한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밉다”고 했다.

취재시스템 붕괴…불신만 쌓여
불신은 냉소를 낳고 결국에는 체념으로 이어진다. “회사를 10년 넘게 다녔는데 이렇게 침체된 분위기는 처음이다.” “보도본부에서 지내는 게 너무 힘들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맘 편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 최근 보도본부에 팽배해진 무기력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기자들의 하소연이다. 위기상황을 타개할 해결점은 보이지 않는다. 잦은 인사와 징계를 통해 조직을 장악하려는 리더십이 문제다.

기자들은 인사가 잦다고 말한다. 출입처에서 뿌리를 내릴라치면 바뀐다는 것이다. 수도권부가 신설되면서 사회부 소속 1~4년차 기자 5명이 이동했고, 지난 7월엔 생활과학부로 경제부 기자들이 일부 옮겼다. 곧 후플러스 기자들의 인사에 따라 연쇄 이동이 이뤄진다. 잦은 인사로 조직이 불안정해지면서 양질의 기사가 나오기 힘든 구조라는 얘기다. 최근엔 정치팀장을 2번이나 지낸 보도국 부국장이 다시 정치부장에 임명되는 이례적인 일도 있었다.

삼성 SDS의 노조 설립 움직임을 기사화했던 김 아무개 기자는 2010년 상반기 개인평가에서 최하위 평가등급인 R등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 과정에서 삼성 측은 협조를 요청했고 보도가 나오기까지 내부 진통도 있었다. 한 기자는 “뉴스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기자에게 R등급을 준 것은 보복 이외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며 “‘나도 잘못하면 찍히겠다’며 알아서들 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MBC 기자회(회장 성장경)는 국장단과의 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취재에 매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달라고 요구했다. 또 심층고발팀 신설도 제안했다. 부장급 한 기자는 “취재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선후배간 또는 기자 상호간에 불신이 쌓여가고 있다”며 “징계나 내리는 소아병적인 사고로는 작금의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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