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기자 6명 해직 민주화 이후 '전무후무'
국내 언론인 해직史
동투·조투 1백47명, 1971년 2천2백87명, 1980년 9백33명YTN 기자 6명 해고 사태는 1980년 이후 방송사 해직 사태로서는 가장 큰 규모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돼 있다.
1970~80년대 언론인 대규모 해직사건은 독재정권에 의해 자행됐다. 1971년 1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 2월 프레스카드제를 실시하면서 2천2백87명의 기자를 거리로 몰아냈다.
언론인 해직사에서 동아일보 사태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동아일보 광고 사태와 관련해 해임된 직원의 복직을 요구하던 동아일보 및 동아방송의 기자, PD, 아나운서 1백13명을 1957년 3월17일 새벽 사측이 경찰력을 동원, 강제 해산시키고 해고한 사건이다. 기자들은 제작거부를 벌이며 철야농성 중이었다.
같은 해 조선일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3월6일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기고문에 반론 글을 실어야 한다고 주장한 2명의 기자가 해직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이던 34명의 기자 역시 해고됐다. 이들은 이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구성했다.
5공화국 아래서 언론인 해직은 극에 달했다. 신군부는 1980년 말 언론통폐합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2천여 명의 언론인이 줄어들었다. 신군부에 항의해 제작 거부 등을 결행한 언론인을 상대로 보안사 언론인대책반이 선정한 해직 대상자는 9백33명에 이르렀다.
노태우 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는 주로 방송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각 방송사별로 해직 사태가 벌어졌다. 1990년 KBS에서는 ‘낙하산 인사’ 서기원 사장 퇴진 투쟁이 벌어졌다. 이 결과 노조원 12명이 구속되고 2명이 수배됐으며 이 중 안동수 위원장 등 10명이 강제 휴직됐다. 이들은 3년 만에 회사로 돌아왔다.
1990년에는 MBC ‘PD수첩’ 불방과 관련, 사장실을 점거했다는 이유로 MBC노조 김평일 사무국장이 해고됐다. 이후 MBC 최창봉 사장의 불신임 운동을 주도하던 안성일 노조위원장도 해직의 아픔을 겪었다. 이들은 3년 뒤 재입사 형식으로 현장에 돌아왔다.
같은 해 평화방송 사태도 컸다. 이 해 4월15일 개국한 평화방송은 개국 6개월이 되기도 전에 초대 보도국장단을 모두 보도국에서 축출하고 보도프로그램을 대폭 축소하는 등 어용방송으로 바뀌고 있다는 내부 비판에 따라 기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그 결과 3명이 구속되고 파업에 참여한 36명 중 27명이 해고됐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1996년 MBC 노조위원장을 지낼 당시 ‘강성구 사장 퇴진 투쟁’과 파업을 주도를 이유로 해고됐다. 당시 MBC 보도국·보도제작국·스포츠국 기자 1백87명은 이에 항의, 6월14일 집단 사표를 내고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이튿날 강성구 사장은 연임된 지 3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으며 최문순 기자는 해직 10개월 뒤 복직됐다.
2000년에는 KBS노조 현상윤 위원장과 김수태 부위원장, 최은 정책실장이 사내 개혁 투쟁과 ‘방송법 개악 저지 파업’을 벌이다 해직됐다. 이들은 이듬해 일터로 돌아왔다.
MBC의 경우 올해 이근행 노조위원장(PD)과 정대균 진주MBC 노조위원장이 해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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