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기자는 회사 연락관?

언론단체 특별집담회 "기자단 자발적 보도관제 그만둬야"

“청와대 기자들은 기자가 아니라 ‘리에종 오피스’(Liasion officer), 연락관들이다. 기사는 안 쓰고 고급 정보를 회사 고위층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김기만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개각에 관한 전반적 내용을 발표할 때까지 보도하지 말라’는 청와대의 엠바고 요청을 수용해 개각 관련 기사를 보도하지 않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청와대의 엠바고 요청과 이를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에 대한 언론계 선배들의 따가운 지적이 쏟아졌다. 새언론포럼, 언론광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로 19일 오후 7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언론단체 특별좌담회-청와대 기자단의 자발적 보도관제-엠바고’ 자리에서였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는 “50년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이렇게 부패한 기자의식은 없었다”고 일갈했다. 최성주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시민을 대변해야할 기자들이 스스로 권력이 되고 있다. 기자라는 특권의식에 젊을 때부터 사로잡혀 사회적 책임감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도내용까지 통제…무차별 수용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기조발제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 ‘일정시점까지 보도유예’를 뜻하는 엠바고가 보도시기를 넘어서 보도내용까지 통제하는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기자단이 담합해 정권의 보도통제에 협조했다는 측면에서 자발적 보도관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엠바고라는 이름의 자발적 보도관제가 반복적, 임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데도 기자단은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지난 6월 한-미 정상이 합의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연기 △2008년 3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삼성 떡값 명단’ 발표에 따른 청와대 논평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사실 △2008년 12월 UAE 원자력 발전사업 수주 등의 엠바고 사례를 들었다.

김 대표는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 1인 미디어시대에 최고 권부에 안주한 청와대 기자단이 엠바고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기자단이 국정운영에 관한 정보를 차단하고 여과해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엠바고 요청에 적극 동조하며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출입기자들에게 쓴 소리가 이어졌다.

우장균 한국기자협회장은 “취재소스를 일방적으로 받아야 하는 출입기자들 입장에서 청와대 요청을 거부하기 쉽지 않은 구조가 있다”며 “하지만 지금 청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엠바고란 미명하에 ‘갈 데까지 갔다’고 할 수 있다. 기자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택 한국환경기자클럽 회장은 “기자들이 최고 권부인 청와대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홍보 일꾼으로 파견된 것으로 보인다”며 “기자단은 출입처에 의존하지 말고 힘을 모아서 진실을 캐내는 보도관행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정통파 친위부대”

청와대의 주문에 기자들이 동조하는 원인이 언론사 사주나 경영진의 낙점을 받은 기자들이 청와대에 출입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주언 언론광장 감사는 “기자들이 고급정보를 회사에 전달하면 회사 경영진은 그 정보를 주식 거래 등에 활용할 수 있고, 그 정보를 제공하는 기자들은 좋은 보직을 유지할 수 있다”며 “언론사 경영진과 기자들이 한데 얽혀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기자단이 로비스트 역할도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청와대 출입기자는 언론사에서 가장 정통파 친위부대”라며 “편집국장까지 보장된 기자들이 출입한다”고 말했다.

백병규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이 모 전 홍보수석이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가 해외연수를 신청하면 회사에 일일이 전화를 해줬다는 얘기가 있다”며 “기자들이 정체성을 상실할 정도로 청와대 편에 서는 것은 개인적인 편익을 도모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이날 집담회에서는 엠바고를 깼다고 출입정지 등을 통해 동료 기자들의 취재를 원천봉쇄하는 이기적인 기자의식을 지적하는 말들과 함께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운영 규정을 손 볼 필요가 있다는 발언도 나왔다.

이효성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외교안보 등 일부 사안의 경우 엠바고 필요성도 있는 만큼 기자협회 차원에서 엠바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를 준수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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