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홍씨 | ||
▲ 박우정씨 | ||
▲ 신홍범씨 | ||
▲ 홍수원씨 | ||
출판사 대표·번역가로 활동 중
김태홍 신홍범 김주언. 언론계에서는 이들 세 사람을 ‘보도지침 삼총사’라고 부른다. 김태홍은 1980년 해직기자로 한국기자협회 회장을 지낸 뒤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회장,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80년대 자유언론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해 광고 이사, 논설위원 등을 지내던 그는 정계에 투신해 광주 북구청장,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지난해 11월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루게릭병 확진을 받은 뒤 서울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신홍범은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 중이던 75년 언론자유수호운동을 벌이다가 해직됐다.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두레출판사를 차렸다. 84년 민언협 결성과 동시에 실행위원으로 일했으며 ‘말’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그 역시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해 논설위원, 논설주간 등을 지내다 91년 한겨레를 떠나 두레출판사로 돌아갔다. 그의 두레출판사는 상업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양서만을 내는 출판사로 명성이 높다. 지난 7월 박형규 목사의 삶을 정리한 회고록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로 출판사 창비가 주관하는 ‘제25회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과거의 언론통제 망령들이 여기저기 출현하고 있다”며 “기자들이 힘을 합쳐 저항하고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지침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은 홍수원 박우정 박성득 이석원 최민희 김태광 정의길 김기석 권형철 등이다. 경향신문 해직기자 출신인 홍수원은 1986년 그 무덥던 여름, 보도지침 사건을 폭로한 ‘말’ 특집호 편집을 전담했다. 김태홍 등이 구속된 뒤 수배령이 떨어져 6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했다. 해직된 뒤 번역일로 생계를 꾸렸던 그는 도피하면서도 영어사전과 볼펜은 챙겼다. 한겨레신문 창간에 합류해 편집부위원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1999년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한 그는 번역일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30여 권을 번역했다. 그는 “보도지침 특집호를 제작하면서 잃어버렸던 언론에 대한 열정을 다시 찾았다”고 회고했다.
박우정은 홍수원과 함께 80년 초 경향신문에서 해직됐다. ‘말’ 편집장과 민언협 실행위원을 지냈다. 보도지침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그는 87년 3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됐으나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장과 논설위원, 논설주간을 지냈다. 도서출판 ‘길’의 대표로 재직 중인 그는 올해 3월 현재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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