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 창립35주년 특집]선후배 대화로 잇는 35년

선배들이 꿈꾸던 유토피아에서 방황하는 후배들

4.19세대와 386세대 언론인의 만남..생겨 문제 나아졌지만 일네 쫓겨 제 길 못찾아



김병익/12.13대 기자협회장(문학과 지성사 대표)

조준상 /한겨레 기자



언론자유를 꿈꾸며 싸우던 선배와 그 선배들이 꿈꾸던 '유토피아'에 있는 후배가 만났다.



65년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던 김병익 문학과 지성사 대표와 94년 한겨레에 입사한 조준상 한겨레 기자.



75년 기자협회장으로서 동아·조선일보 기자 170여명 해직 사태와 정권의 기자협회보 강제 폐간문제를 국제여론에 호소하다가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사퇴당했던 김 대표와 99년 국민주주신문 한겨레에서 언론개혁에 대한 기사를 쓰는 여론매체부 기자.



펜촉에 잉크를 찍어 갱지에 기사를 썼던 현대 초기의 전직기자와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는 세기말의 현업기자.



30여 년이란 짧다면 짧은 세월 건너편 서로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 '애연가'란 것 외엔 별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11일 오후 문학과 지성사 사무실에서 말길을 텄다.



김 : 여기에서 문화부 기자들을 많이 만나는데 참 얌전하고 조용해요. 아카데믹하달까요? 우리 때 기자들과는 체질적으로 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형도 노트북을 들고왔는데 옛날보다는 테크닉칼한 부분이 엄청나게 달라졌구나 느껴요.



제가 입사한 65년 쯤엔 책상 위에 잉크병이 있었어요. 갱지로 만든 200자 원고지, 아니면 종이를 신문 한단 글자수 11자에 맞게 잘라서 썼어요. 이제는 신문사에서 컴퓨터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제작속도도 빨라지고…. 문명의 힘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데요.



기사가 실상 담나 고민도



조 : 선배님, 기자가 된 동기가 있으세요?



김 : 제가 정치학과 출신인데 군 사병 때 취직자리를 생각해보니 갈 데가 없어요. 신문사는 아무 전공이나 낼 수 있어 그냥 원서를 냈죠.



부모님은 불량배나 하는 일이라며 못 마땅해 하셨고 친구들은 의외라고 했어요. 왜 기자에 대한 선입견 있죠? 많이 마시고 동료, 취재원들이랑 잘 놀러다니고 활동적이고…. 그런데 나는 술도 못 마시지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지도 못하지&. 걱정하면서 들어갔는데 술 안 마시는 분, 앉아서 책만 읽는 분 별 사람이 다 있습디다.



갖가지 성격과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서 자질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신문사더라구요. 다행히 적성에 비교적맞아서그랬는지 아주 일을 즐겁게 했죠. 한 사람 생에 있어 가장 활발한 그 시절을 기자로 지냈다는 게 참 즐겁고 보람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출판, 문학쪽에 25년 동안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도 기자였기에 얻을 수 있던 자리였고 자질이었죠.



신문사에 있었던 기간은 제 일생에 몇 분의 일 되지 않지만 이후의 생애는 기자로서의 삶이 결정해줬다는 생각이에요. 조형 경우는 기업이라든지 취업길이 숱하게 열려있는데 왜 지금 신문사에 들어있어요.



조 : 저는 2년 간 화학노련에서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제 부인이 한겨레 취업을 권했어요. 그땐 신문기자라면 참 자기시간이 많겠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할 수 있겠다 시험을 봤는데 운 좋게 붙었어요.



김 : 어떻습니까. 입사 때 기대하고 지금 한 5년 후의 자기평가가.



조 : 수습 때 이거 못 하겠다 하는 생각하게 된 게, 서로 연관이 없는 팩트를 이어 이상한 걸 만들어내거나 팩트가 가공될 때였어요. 기사가 실상을 제대로 담는거냐, 내가 이런 거 하려고 들어왔나 싶어 그만 두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다 국제부에 간 게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시각도 넓어지고 공부도 많이 됐죠.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어긋나지 않게 전달해왔다 싶습니다.



기자생활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구요.



김 : 5년 됐으니까 지금부터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할 나이가 아닌가&.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배우는 단계겠죠? 사회에 대해, 신문에 대해, 또 사건을 보는 눈을 배우고&.



조 : 김 선배는 계속 문화부에 계셨어요?



김 : 수습 끝내고 외신부에서 한 두어달 있다가 신문사 나올 때까지 문화부에 있었어요. 그때는 신문 지면이 주 36면 하루 4면으로 일이 많지는 않았어요. 주 48면, 하루 8면이 되면서 매일 기사를 쓰게 됐죠. 제가 신문사에 있으면서 문학과 지성이란 계간지 창간에 참여하고 그만 둔 후 출판사를 만들어서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 문화부에서 배웠던 문학과 출판, 거기서 사귄 친구들 덕분이었습니다. 신문사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신문사 덕을 많이 봤죠.



(웃음) 그땐 나라도 신문사도 기자도 가난했고 정치적으론 압박받았고 언론자유를 옥죔당했습니다. 발행인이든 기자든 필화를 당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죠. 그런 가운데서 어떻게 하면 진실을 보도하고 비판적 목소리를담을까상당히 고심했어요. 기자들 전반적으로 가난의 미덕이 있었습니다. 헌신적으로 일한다든가 진지하게 상황을 본다든가 수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비판할 것은 비판한다든가&. 현실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우니까.



언론자유투쟁운동이 터지고 조선 사태, 동아 사태 일어나고 광고게재운동이 벌어지고 결국 제가 그만 두게 되었지만.



조 : 그때 기자들 월급이 굉장히 적었다면서요.



김 : 견습기자 월급이 3000원이었어요. 짜장면이 100원 하던 때니까 매일 저녁 짜장면을 먹으면 다 나가는 금액이었죠. 몇 달 후 7000원으로 올라 좀 나아졌죠. 10년 근무하고 동아일보 그만 둘 때 퇴직금을 90만원 받은 걸 보니 당시 월급은 한 9만원 되었던 것 같아요. 87년 때 군부독재가 끝나갈 때 기자협회보에 이런 글을 썼던 적이 있어요. 우리 때 기자들이란 현실이나 권력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늘 긴장하고 자기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기자들이 앞으로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면 외면보다는 자기내면에 대한 싸움이 시작되지 않을까. 돈에 대한 유혹, 권력에 대한 경사, 무책임한 보도태도하든가&. 이젠 자기 자만을 청산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하는 내용이었죠. 어떻습니까, 지금 기자사회와 비해볼 때.



조 : 많이 무감각해져서 선배들의 정신을 젊은 기자들이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촌지, 골프, 취재원의 접대도 여전하구요. 기자들이 현실적으로 취재를 하려면 골프 치고 룸싸롱 갈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자기에게 엄격하지 못하고 외부에 탓을 돌리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 : 우리 때도 촌지나 기자들의 정치, 경제, 행정 쪽 진출이 많았습니다. 언론기관이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또 하나의 권력임은 틀림없거든요. 그러니까 그 권력을 약화시키거나 끌어들이기 위해 정치권력이 기자와 언론을 유혹하고 매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 때 주류는 외부의 그런 유혹에 완강히 저항하는 쪽이었죠. 지금은 오히려 그런 의식이 약화된 것 같아요. 지금은 기자들의 사회적 대우, 사회적 역할이 어느 직종보다 좋지 않은가요.



언론인고용지원센터에 막대한 정부예산을 받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해요. 그런데 기자들이 일할 조건이나 대우가 대폭 개선된 데 비해 얼마나 합당한 역할을 하는 지는&. 조형은 어떻게 보세요?



조 : 선배들땐 면이 적어서데스크가며칠만에 한번 '너 한 번 써봐' 하면 그간 취재해온 것을 원고지 4, 5매에 쏟아 부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에 비해선 전문성이나 깊이 있게 파악할 기회가 적은 것 아닌가 해요. 심지어 지금 쓰는 기사가 한달 전에 쓴 기사와 일관성이 있는 것인지조차 모를 때가 있습니다. 기사 쓰는 데 얽매여 자기가 취재원에게 들은 내용을 검증할 시간도 없이 쏟아내죠. 어쨌든 메꿔야 하니까.



김 : 지금도 전문성, 자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자도 게으르고 언론사도 배려하지 않는 것 같네요. 중앙일보가 박사급 전문기자를 채용하는 걸 보고 반가웠는 데 얼마 전 거기 기자를 만나보니 당초 기대만큼은 잘 안된다고 하데요. 기자들을 전문화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출입처를 자꾸 바꿔서 만능이지만 특기가 없는 기자들을 키워요. 기자라도 한 자리에서 10년 이상하면 대가가 될 텐데&. 문학 담당기자들을 보면 심지어 몇 달만에도 바뀌어요.



대기자, 전문기자는 고사하고 일반기자의 수준에도 못 미치게 막는 것 아닌가 싶어요. 회사에서 정책적으로 전문기자를 키워내야 합니다. 기자들도 전문성을 키우려는 의지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좋은 자리에서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않나요?



조 : 저희 동기들 보면 흔히 말하는 물 좋은 부서에 별로 안 가려고 해요. 이 이일 좋고 계속 했으면 좋겠다 하는 소신이 있는 기자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정치부, 경제부만 좋다 하는 기자들보다는.



김 : 우리는 현실적인 수난을 많이 당하느라 시대가 바뀌는 데 준비를 못해 막상 자유시대가 온 후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이젠 기자들이 언론사에서 뜻을 기대했는데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다 싶데요. 70, 80년대 기자, 언론은 싸우는 대상이 분명했던데 비해 90년대엔 적이 없어졌죠. 대신 자유로와졌지만 거의 무한한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대해 90년대 기자들은 난감해 하는 것 아닌가요.



멀티미디어, 문화, 과학의 시대로 세기 전반이 바뀔 때 기자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심각히 고민해야 합니다.



조 : 요즘 추세가 진지한 것, 무거운 것을 기피하잖아요. 신문이 가벼워져선 안된다, 또는 진지하되 가볍게 다루자는 등등 여러가지 의견들도 나오고 있고요. 아직 (진지한 주제를)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가 전망을 찾지 못하고 있죠.



김 : 기자나 언론에게서 주어진 자유로 무엇을해야하는가 하는 관점이 잡히지 않습니다. 이런 비유가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전자게임 같아요. 어떤 공격대상이 나타나면 한없이 공격하고 무너지면 쾌재를 부르고 다시 공격대상을 찾고&. 물론 비판받고 물러나야 할 사람은 물러나야겠지만 보도가 좀 성급하고 무책임한 것 아닌가, 이해보다는 폭로만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합니다.



조 : 얼마 전부터 더 비관적이 됐는데요. 나라가 망해가는 것 아닌가, 개발독재의 핵심인 산업정책이라는 계승되지 않으면서 나라의 기반이 허물어지는 것 아닌가&. 이미 멕시코 꼴이 됐다는 말도 나오고요. 이제 피해를 적게 하고 적응해가는 것만 남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니 힘이 쫙 빠지더라구요.



언론보도가 전자 게임 같아..



김 : 기자는 현실과 그것을 보는 시각,정보력으로 앞날의 전망와 사태를 예측하는 역할을 하는 직종입니다. 입안자의 정책,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국민의 뜻과 희망, 학자들의 비판적 시선을 아우르는 위치가 기자죠. 기자는 큰 사태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가 현상 수준만 유지하는 것은 기자도 책임이 있습니다. 영구혁명이랄까요. 사회가 발전하려면 자기 반성, 자기 비판을 해야 하는 데 그 역할은 언론의 몫입니다.



기자로서 무엇을 비판하고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하나 알아야 합니다. 언론사들이 흔히 내거는 '중도', '객관'이란 사시는 사실 위선이죠. 차라리 난 보수적이다, 난 진보적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이렇게 생각한다, 주관을 밀고 나가는 게 낫습니다. 그래야 언론도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힘을 얻습니다.



외국 언론이 자기 입장을 천명하는 태도는 배울 만 합니다. 신문도 반성해야 하지만 거기 합류하는 기자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언론이 현실에 동참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 일을 젊은 기자들이 잘 감당해 주세요.



재떨이엔 20여 개의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였다. 대담 마치고 녹음기를 끄자 선후배는 진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후배는 장성한 1남4녀의 아버지인 선배에게 '자녀교육의 비결'을 물었다.



선배는 부모가 아이의 환경이더라며 환한 웃음으로 일화들을 들려줬다. 매일 방바닥에 엎드려 원고지와 씨름하는 아버지를 흉내 내 딸 아이가 글자도 모르면서 원고지 칸을 메꾸며 놀더라는 이야기,부모가책을 읽는 모습이나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거기에 익숙해진 딸이 결혼 후에 남편이 도통 책을 안 읽는다고 불평하더란 이야기, 막내아들이 고등학교 때 '야한 비디오'를 함께 보자니까 쑥스러워하면서 도망가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서….



3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그들이 공유하는 키워드는 다음 세대엔 더 나아질 것이란, 미래를 향한 '희망'이었다. 정리=이경숙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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